네줄 冊

나는 타인이다 - 윤향기

마루안 2017. 12. 17. 19:29

 

 

 

시에게 영화가 전하는 당신 이야기, 부제목에 눈길이 먼저 간 책이다. 우연히 발견한 책이 속도감 있게 읽힌다. 책은 안 읽힌다는데 출판 되는 도서는 늘어나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수준 이하의 내용으로 독자를 현혹하는 책들이 넘쳐난다. 제목에 낚였다가 막상 책을 들추면 허접스런 내용과 함량 미달의 문장으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출판도 일종의 사업이기에 그럴 수 있다. 그래서 독자들이 책을 고르는 혜안이 필요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이 설렜다. 시인이 쓴 영화 감상 후기라 할 수 있다. 무슨 거창한 영화 이론이나 문예 사조를 동원하지 않고 시인의 잔잔한 감상기가 촉촉하게 스며든다.

20편이 넘는 영화를 언급했는데 두 편을 제외하고 전부 내가 본 영화다. 시인의 영화 보는 방향이 나와 비슷하다는 증거다. 작금의 영화판 또한 관객을 끌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수많은 영화가 스크린에 걸리지만 대기업 배급사에 의해 관객의 선택권이 좌우되는 현실에서 좋은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의 눈이 필요하다.

 

오래전에 문자가 발명되면서 시가 시작되었으나 영화는 과학이 발달한 근대에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시와 영화가 밀접한 관계이듯 이 책에서 시인과 영화는 한몸이다. 미적거리는 남편을 꼬드겨(?) 몇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순례하듯 영화관을 찾는 시인의 영화 사랑이 오롯이 전해온다. 진정으로 영화를 좋아하지 않으면 접할 수 없는 작품이 많다.

 

반 고흐, 르누와르 등 예술가의 전기 영화를 기억하는 관객이 몇이나 될까. 유심히 영화 정보를 찾지 않으면 언제 개봉했는지도 모르고 지나쳤을 영화들이 시인의 문장에서 생생하게 상영된다. 최근 개봉 영화도 있지만 오래전에 개봉해서 잊고 있던 영화도 여럿이다. 

 

글루미 선데이, 티벳에서의 7년,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등의 영화는 내 가슴에 박혀있던 장면이 재생되는 계기였다. 좋은 시가 생명력이 길 듯 좋은 영화 또한 관객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타인이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시인이 언급한 류시화의 시 물안개를 인용한다. 예전에 곽재구의 포구 기행이라는 책에서 접했는데 여기서 다시 읽어도 여전히 좋다.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이제 세월이 나에게 묻는다그럼 너는 무엇이 변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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