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낭만의 소멸 - 박민영

마루안 2017. 12. 14. 18:50

 

 

 

헌책방을 순례할 때가 있다. 딱히 어떤 책을 사겠다는 생각보다 그저 옛집에 들르듯 가는 것이다. 헌책방에 가면 무조건 사고 보는 시절이 있었다. 맛있는 음식 두고 참지 못하는 것처럼 들어가면 빈손으로 나오질 못했다.

집에 쌓여가는 책들, 읽으려고 샀지만 절반 이상은 못 읽은 책이다. 혹자는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것도 있지만 꽂아 두기 위해 산다고,, 목차만 훑어봐도 읽은 것으로 친다고,, 나도 그때 절반쯤은 수긍했다. 지금은 아니다.

몇 해 전에 미니멀리즘을 실천한다고 주변을 정리했다. 큰 방 사면을 가득 채운 책을 가장 먼저 정리했다. 담배 끊기 힘든 것처럼 책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실천 하고 나니 집안의 다른 것까지 하나씩 버리는 것이 얼마나 홀가분한지를 알았다.

버리기 전에 책장을 쭉 돌아보니 나중에 읽어야지, 언젠가는 읽을 시간이 날 거야, 그러고도 펼치지 못한 책이 부지기수다. 사면서 버린다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지금은 가능한 사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책은 안 사기가 참 힘들다.

그래서 꼭 읽을 책만 산다. 고르고 골라 목록에 적은 책 중에 한두 권 꼴이다. 헌책방을 돌다 보면 뜻밖의 책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이 그랬다. 저자도 낯설다. 제목에 끌려 펼친 책이었는데 한 꼭지 읽고는 바로 샀다. 이런 책은 늦게라도 읽어야지다.

읽으면서 책도 인연이 있어야 함을 실감한다. 젊은 세대들은 이 스마트한 시대에 무슨 구닥다리 낭만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낭만도 진화한다. 내 어릴 적 마당 모퉁이에 있는 재래식 변소에서 비내리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문짝도 없는 초가 변소에 앉으면 작은 꽃밭이 보였고 변소 옆 구덩이에서 자란 호박잎에 떨어지던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일을 봤다. 신문지로 뒤를 닦던 시절 그 풍경이 낭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는 아련한 추억이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다.

신문지도 없던 어머니의 어릴 적 시절은 호박잎이나 지푸라기를 비벼서 뒤처리를 했다고 한다. 어머니 또한 그 시절을 낭만적이라 생각할까. 펜팔로 친구를 사귀고 고향 떠난 자식은 편지로 안부를 전했다. 연인들도 지금은 편지를 쓰지 않는다.

당연 그 낭만적이던 우편배달부도 지금은 택배 기사와 동격, 머리 희끗한 중년들이 오래된 시집에서나 회상할 뿐 아무도 낭만적이라 하지 않는다. 저자는 많은 것에서 사라지는 낭만을 그리워하며 대안을 제시한다. 

낭만도 시대를 역행할 수는 없다. 저자는 스마트 시대에 영악하게 살 것인가, 총명하게 살 것인가를 제안한다. 그리고 경제 발전과 과학기술에 대한 맹목적 추구는 앞으로는 남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로는 밑지는 장사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정확한 지적이다.

저자의 말처럼 모두 스마트하게 살고 싶지 우둔하거나 미련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진정한 스마트함은 영악함이 아니라 총명함을 의미한다. 낭만의 소멸 시대에 모처럼 사람 냄새 풍기는 책 읽었다. 책을 읽은 내 결론은 이렇다. 조금 불편하게 사는 것이 낭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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