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이순의 어느 날 - 허형만

마루안 2017. 12. 17. 19:01



耳順의 어느 날  - 허형만



달빛에 흔들리는 댓잎처럼

여직 내 몸에서

푸른 비린내 서걱이는 소리 들린다
이 나이면 낯빛 우럭우럭해지는
해거름 바닷가에 쯤 나앉아 있는 듯하여
구름발치 머언 들목 쪽 향해
깨금발 딛고 목 뺄 일 없을 듯하여
산절로 나절로
이 아침 맑은 바람이나 벗삼고
연꽃처럼 풍란처럼
멀리 갈수록 맑아지는 향기나 머금으려 했더니
어인 일이냐 내 몸이여
댓잎에 흔들리는 달빛처럼
아직도 자욱한 달안개 속이라니



*시집, 눈 먼 사랑, 시와사람








이제 가노니 - 허형만



이제 가노니,
본시 온 적도 없었듯
티끌 한 점마저 말끔히 지우며
그냥 가노니


그 동안의 햇살과
그 동안의 산빛과
그 동안의 온갖 소리들이
얼마나 큰 신비로움이었는지


이제 가노니,
신비로움도 본시 한바탕 바람인 듯
그냥 가노니


나로 인해 눈물 흘렸느냐
나로 인해 가슴이 아팠느냐
나로 인해 먼 길 떠돌았느냐
참으로 무거운 인연줄이었던 것을


이제 가노니,
허허청청 수월(水月)의 뒷모습처럼
그냥 가노니





# 서른은 어떻게 먹었는지 정신 없이 지나갔고 마흔은 수없이 달려드는 유혹에 세월을 탕진했다. 오십을 누가 지천명이라 했는가. 하늘의 명을 아는 것은 고사하고 화를 달랠 줄도 모남을 품을 줄도 몰랐으니 그저 철 들지 않는 돌연변이를 원망할밖에,,,, 아직도 가슴에 얹힌 돌덩이 내려 놓질 못했으니 내 나이를 믿지 않는다. 저만치 손짓하는 이순 고개가 까마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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