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첫눈 - 조인선

마루안 2017. 12. 16. 23:27



첫눈 - 조인선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바람이 분다
시 쓰는 친구에게서 대딸방을 개업했으니 한번 들르라는 전화가 왔다
나비 한 마리 허공에 떠 있었다
간판은 위장이었고 지하 내부는 변태를 꿈꾸기에 적당한 어둠이었다
종업원은 문을 잠근 채 예약된 손님인지 확인한다
침묵이 고여 있는 방으로 들어가면 테마는 정해져 있다
혁명은 한동안 숨어 지낸다
사춘기로 뜨겁던 그 여름
골방에서 몸을 활처럼 구부려 성기를 빨았었다
오월 어느 날
대열을 이루어 화염병을 던지며 구호를 외쳤다
한때 전경이었던 나에게 돌을 던졌다
외로운 생이 더욱 막막해졌다
시간은 어떻게 생겼을까
너는 세월이 가도 변함없다며 어머니 혀를 차신다
바람 불어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폭발한다면
눈물이거나 정액이거나 타오르는 불빛이거나
새 한 마리 서울 한복판에서 모이를 찾고 있다
서울이 그립다가도 도저히 이곳에서 못 살 것 같은 마음이
집으로 오는 내내 따라붙는다
차창으로 부딪치는 눈송이들이 제 몸을 물로 바꾸는 시간은 뜨겁다



*조인선 시집, 노래, 문학과지성








첫사랑 - 조인선



갈 데가 없어 다방에 갔다
레지와 잡담을 나누다 그 짓이 하고 싶었다
흥정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내가 집에 데리고 온 첫 여자는 다방 레지였다
쉽게 만나 쉽게 끝났지만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었다
그리고 한 달 후
결혼하러 베트남으로 향할 때 여동생은 울었었다
집에 오니
아내는 한 장에 삼십오 원짜리 봉투를 붙이고 있었다
나는 아무 내색도 없이
가만히 옆에서 아내를 도왔다






# 시골에서 소를 기르는 시인은 베트남 여자를 아내로 맞이해 오랜 노총각 딱지를 뗐다.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데 맞는 말인지 헐렁했던 詩가 빳빳해졌다. 긴 여운을 남기는 시를 반복해서 읽는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무작정 찾아 왔던가. 이래서 첫사랑은 아프지만 오래 남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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