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송년회 - 황인숙

마루안 2017. 12. 17. 18:40



송년회 - 황인숙



칠순 여인네가 환갑내기 여인네한테 말했다지
"환갑이면 뭘 해도 예쁠 때야!"
그 얘길 들려주며 들으며
오십대 우리들 깔깔 웃었다


나는 왜 항상
늙은 기분으로 살았을까
마흔에도 그랬고 서른에도 그랬다
그게 내가 살아본
가장 많은 나이라서


지금은, 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
이런 생각, 노년의 몰약 아님
간명한 이치


내 척추는 아주 곧고
생각 또한 그렇다 (아마도)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시집,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문학과지성








또, 가을 - 황인숙



온다, 온다, 오리라
이 순간 공포는 질겨라
어제까지도 여름이었는데
선들, 돌변한 바람에
삐걱
황량한 영원이 열리고
영혼은 닫힌다
맹렬하게, 달아나지도 못하고
몸서리치는 몸뚱이
전신 살갗이 곤두서고
발가벗겨진 뼈들이
영원의 폐허에 던져진다
아, 영원 속에서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는
이 소름은 질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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