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기쁜 소식 하나, 슬픈 소식 둘 - 현택훈

마루안 2017. 12. 15. 21:02



기쁜 소식 하나, 슬픈 소식 둘 - 현택훈



문학과 겨울이 만나면
음악이 된다, 기억의 몽타주
비에 젖은 자동차 엔진 소리
차창에 부딪히는 빗물
눈물을 훔치며 달리는 택시
바람에 흐르는 계절
빈 좌석에 물든 얼룩
차창 밖 무정차역
아이들의 흐릿한 손짓
중단 된 다리 공사
조용한 마음, 플라스틱 피크
빗속을 걷는 사람
펼치려다 그만 둔 우산
기억에 물든 코스모스
검은 플라타너스의 비애
바람의 발걸음에 맞춰
불을 켜는 가로등
음악처럼 반짝이는 횡단보도
옥상에서 바라보는
건너편 옥상 너머로 흐르는
지붕 위의 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속을 흐르는 강물
무거운 바람에도 나부끼는
원룸 전세 월세 즉시입주
누군가 버리고 간 컴퓨터


음악과 강물이 만나면
문학이 된다, 넥타이를 맨 낙타



*시집, 지구 레코드, 다층








눈 오는 날 - 현택훈



삼십 분이나 지났는데
약속한 당신은 오지 않는다
떡갈나무 공원 벤치가 차갑다
자리에서 일어나 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뺀다
다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는 순간,


눈이다
눈이 내린다


길 건너편 화랑에선
샤갈의 그림전이 열리고 있다
협상은 결렬되었다
레코드 가게에서
올드 팝송이 흘러나온다


눈이 온다
눈이다


나는 눈 오는 별에서 태어났다
누군가 화랑에서 한 폭의 추억을
마음에 넣고 나와서는
어디론가 총총히 걸어간다
그래, 약속을 꼭 지킬 필요는 없지
나는 삼십 분 정도
혼자 걷기로 한다





# 현택훈 시인은 1974년 제주 출생으로 우성정보대 문예창작과와 목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2005년 <지용 신인문학상>, 2007년 <시와정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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