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오늘 점심 안성탕면 - 성선경

마루안 2017. 12. 12. 20:59



오늘 점심 안성탕면 - 성선경



내 그대를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주름졌는지
냄비에 끓는 물이
꼬불꼬불 소리를 낸다
먼저 면을 넣고
스프를 뜯어 고명처럼 얹으면
일순 창자가 주름을 풀고 꼿꼿이 일직선으로
국수 면발처럼 다 풀릴 듯하다
늙은 늑대같이 고픈 배는
소리도 꼬불꼬불 질러
곧은 젓가락으로 꼬불꼬불한
면발을 냄비뚜껑에 들어 올리자마자
김치는 벌써 발갛게 달아오르고
나는 안성맞춤으로 턱을 당긴다
안성맞춤이라니, 이 주름진 하루가
내게 안성맞춤이라니, 내 그대를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주름졌는데
국물을 마저 들이킨 배가
일순 주름을 풀고 꼬불꼬불한
마음을 풀고 울음도 아닌
웃음도 아닌 큭큭큭 소리를 낸다
내 그대를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주름졌는데, 오늘 점심이
얼마나 주름졌는데.



*시집,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산지니








명태 한 마리 놓고 딴전 보는데 - 성선경



한 서른너댓 된 떠꺼머리 경상도 총각이
어쩌다 노래방에 가 노래 한 자락을 배웠는데
다 까먹고 첫 소절만 겨우 외워 와서는
"언제 까지나 언제 까지나"
틈만 나면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는데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나오다 부르고
"언제 까지나 언제 까지나"
밥 먹고 양치질하다 부르고
일하다 말고 부르고
새참을 앞에 놓고 부르고
"언제 까지나 언제 까지나"
점심 먹고 부르고
담배 한 대 하다 부르고
샤워하다 부르고 닦고 나오며 부르고
"언제 까지나 언제 까지나"
틈만 나면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는데
칠십 노모가 듣다 듣다 가슴이 답답하여
한 말씀 하시는데
이놈아, 장가만 가면 돼
강가만 가면 돼, 하고 거드는데
반 푼 떠꺼머리 경상도 총각은
노래방에 가 배운 노래 한 자락을
다 까먹고 첫 소절만 겨우 외워 와서는
"언제 까지나 언제 까지나"
틈만 나면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는데.





# 성선경 시인은 1960년 경남 창녕 출생으로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널뛰는 직녀에게>, <옛사랑을 읽다>, <서른 살의 박봉 씨>, <몽유도원을 사다>, <모란으로 가는 길>, <진경산수>, <봄, 풋가지行>,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파랑은 어디서 왔나> 등이 있다. 고산문학대상, 경남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