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겨울의 유서 - 한우진

마루안 2017. 12. 11. 18:01



겨울의 유서 - 한우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네 글씨체가 아니구나, 아니라며

너에게 뛰어내리는,

너를 어쩌지 못하고 발만 동동,

눈발이 허리를 비튼다.

네가 쓴 자서自序 한 줄도

언제 한번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내가

어쩌지 못하고 눈발을 맞는다.

눈발이 발목을 꺾는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강이 흐르면서 유서를 쓴다.

나무체였다가 구름체였다가

드문드문 창호지를 바른 얼음 밑으로

너의 서체書體가 드러난다.

살아야겠다, 살아야겠다,

강이 살얼음 물고 유서를 쓴다.



*시집, 까마귀의 껍질, 문학세계사










12월 - 한우진



사랑은 떠나고 술이 늙는다


마른나무들 단추를 푼다


아직도 어떤 여자의 옷은 따뜻해서 눈물이 열린다


무릇 내 청춘에 재라도 남았느냐고


바람이 분다






# 한우진 시인은 충북 괴산 출생으로 2005년 <시인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까마귀의 껍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