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중년 - 강연호

마루안 2017. 12. 3. 20:37



중년 - 강연호

 


불 끄고 잠들지 못한 지 오래다
책상 앞에 앉아 밤새는 날 많아졌다
물론 별다른 재미 못 봤다
뾰족한 수는 아무데도 없었다
창 밖으로 눈은 자주 내렸다
틈틈이 비나 안개도 자욱했다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 오래 머물곤 했다
꺼이꺼이 건너편의 누군가를 부르고 싶었다
아침이면 곤하게 잠들고팠다
감기도 아닌데 목젖은 잘도 부어올랐다
사나흘 춥거나 사나흘 따뜻했다
세상의 길이 얼었다 녹았다 반복했다
엉키거나 풀리는 건 날씨만이 아니었다
속으로 다잡을 것도 많았다
곰곰 되새길 일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체로 몸 따로 마음 따로였다
머리맡의 불을 끌 수가 없었다
시퍼렇게 부릅뜬 날들이 흘러갔다
내리는 눈이 납탄처럼 무거웠다

 


*시집,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문학동네



 





바닥 - 강연호



그는 지금 여기가 바닥이라고 생각한다
더는 밀려 내려갈 곳이 없으므로
이제 박차고 일어설 일만 남은 것 같다
한밤중에 깨어나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면
들끓는 세상이 잠시 식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갈증은 그런 게 아니다
바닥의 바닥까지 내려가
여기가 바로 밑바닥이구나 싶을 때
바닥은 다시 천길 만길의 굴욕을 들이민다는 것을
굴욕은 굴욕답게 캄캄하게 더듬어 온다는 것을
그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 저어보지만
스스로를 달래기가 그렇게 쉬운 게 정말 아니다
그는 바닥의 실체에 대해
오래 전부터 골똘히 생각해온 듯하다
그렇다고 문제의 본질에 가까워진 것은 아니지만
바닥이란 무엇인가
규정하자면
털썩 주저앉기 좋은 곳이다
물론 그게 편안해지면
진짜 바닥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