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대라는 나의 처음 - 이용호

마루안 2017. 12. 2. 20:45



그대라는 나의 처음 - 이용호



최초의 빗방울을 툭 하고
이마에 닿을 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대가 내게 처음
툭 하고 떨어졌을 때에도
나는 나도 모르게
그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모든 풍경이 물이 되어
스스로 흘러가는 여주 신륵사
그대가 내게 툭 하고 던져젔던
그 최초의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처음이란 그저
떨어져 내리는
최초의 빗방울 같은 것


시작도 끝도 없이
숨겨진 세월의 나이테를 이룬
그대의 서글픈 손
마디마디를 최초로 매만져보는
느낌이라 할 수 있을까


그대가 내게 툭
또 떨어져 내린다
아무래도 나는 또
고개를 들 수밖에 없다


그대라는 나의 처음
그대라는 나의 마지막,



*시집, 내 안에 타오르던 그대의 한 생애, 현대시학








등대 - 이용호



외로움을 바람 삼아 그대
살아온 그 긴긴 어둠의 날들이
어쩌면 그토록 허무한 시간이었을까
저녁노을
물새들의 울음들
그대 영혼에 물들이고
밤마다 찾아오는 숱한 침묵의 그늘
차마 갈 수 없었던 산자락으로
육신의 빛을 쏘이며 다가간다,
다가간다 그대여
갈 길은 멀어도
누가 먼저 그 길을 떠나가는지
누가 먼저 돌아오려 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은 마음으로 부서지는
그대 영혼의 푸른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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