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지상을 거슬러오르는 꿈 - 이소암

마루안 2017. 11. 30. 20:45

 


지상을 거슬러오르는 꿈 - 이소암


가슴 속 저벅거리며 그대 건너 간다
그 발자국에 고여, 말없이
흔들리는 슬픔을 데리고
나는 또 어디론가 흘러가야 한다

한때 지상을 거슬러오르는 꿈꾼 적 있었다

등비늘 꺾인 채 돌아와 실눈을 뜨면
아침은 빚쟁이처럼 지켜 서 있고
나는 그 때마다 서둘러
낮게 더 낮게, 저 아름다운 세상이
내놓은 그림자같이 흘러야 했다

내가 젖으면 그대 또한 젖는다

흘러가다 이렇게 흘러가다가
찬란히 몸 휘감는 겨울밤 만나면
혹 아는가, 그대
젖지 않고 건너도 될 길이 될지


*시집, 내 몸에 푸른 잎, 시문학사

 

 

 




사랑한 만큼 - 이소암


모악산 입구, 은행나무
한때의 기억들
낱낱이 발 아래 떨군 채
긴 생각에 잠겨 있다

생각나는 것이 많을수록
눅음은 그만큼 가까워진 것

무엇이 두려운가,
눈부신 젊은 날
사랑한 만큼
꼭 그만큼만
잊고 가면 되는 것을

 



*시인의 말

'페르소나'(persona)의 최소화!
이것은
내 인생의 목표이자
내 시의 정점(頂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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