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못다 이룬 꿈을 아쉬워하지 말자 - 나태주

마루안 2017. 11. 29. 21:17



못다 이룬 꿈을 아쉬워하지 말자 - 나태주



오늘도 아무런 일 없이
하루 해가 조용히 물러간다
산은 산대로 여전하고 푸르고 우뚝하고
강물은 지구 밖으로 빠져나갈 듯
아픈 몸부림 하나로 흘러 흘러만 가고
저녁 노을은 또 한 차례 불끈 주황빛
두 주먹을 들어올렸다 슬그머니 내려놓는다


오늘 하루 감사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으냐!
어떤 친구는 내 나이 무렵에 세상을 스스로 버렸고
심지어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첫울음 함께
세상을 버린 어린 아기도 있다
오늘 하루 얼마나 좋은 일들이 많이 있었는가
그것을 곰곰이 짚어보아야 한다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그것을
떠올려보아야 한다


간절히 만나고 싶었지만 끝내
만나지 못한 사람을 안타까워하지 말기로 하자
오늘 비록 못다 이룬 꿈이 있다 하더라도
그 꿈을 아쉬워하지 말기로 하자
오늘은 오늘로서 가득하고 내일은 내일로서
눈부실 따름 아니겠는가 말이다



*시집, 물고기와 만나다, 문학의전당

 

 





 
낙타 - 나태주

 
 
언제부턴가 마음 속에
어린 낙타 한 마리 살고 있었다
날마다 낙타를 몰고 세상 속을 걸었다
타박타박 모래밭, 먼지와 바람의 길이었다


더러는 한 모금의 물이 사위웠다
내가 낙타였으므로 한 번도 낙타 등에 올라가 본 적은 없고
누군가를 태우거나 무거운 짐짝을 올려놓고 걸었다


가장 많이 올려놓았던 짐짝은
막막한 슬픔과 대책없는 그리움이었다
무엇보다 그 짐짝을 내려놓고 싶었다


그러나 번번이 쉽지 않은 일
내려 놓으려고 하면 막막한 슬픔과
대책없는 그리움은 살을 파고들었다
오늘도 나는 짐짝을 가득 싣고 세상 속을 떠난다
다만 숨이 가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시집, 시인들 나라, 서정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