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어둠에 들다 - 김완하

마루안 2017. 11. 29. 20:55



어둠에 들다 - 김완하

 


어둠이 오기 전
숲 앞에서 시간은 잠시 잠깐
움찔한다
쌓인 빛을 털어내려는 듯
풀들마다 허리께를 한번
요동친다


어둠은 세상의 길을 풀어 버리고
소리 속으로 귀를 묻는다
내가 밟고 가는 걸음에 놀라 화들짝
깨어나는 숲,
제 울음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벌레들


어둠 속에서 땅은
나에게 순순히 길을 내어 준다
어둠에 나를 묻자
길은 훤히 트였다
숲을 빠져나올 즈음
어둠은 겹겹 짜인 시간의 조롱을 흔들었다


눈 익어 오리나무 둥치도
어둠 속 희게 빛난다
작은 도랑을 건너
물은 흘러갈 만큼 가서야 소리를 죽인다
어둠도 깊어질 만큼 깊어야 또 빛이 된다



*시선집, 어둠만이 빛을 지킨다, 천년의시작


 





 

외로워하지 마라 - 김완하

 
 
네가 외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세상의 그리움이 너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젖은 풀잎 하나
네 등 뒤에 얼굴을 묻기 때문이다


네가 외로워하면
이 세상이 다 외로운 것이다
지상에 꺼지지 않는
마지막 등불 하나도
바람 앞에 몸을 내줄 것이다


너를 잃어버리고
세상의 손길에 모든 것을
기대어 설 때도
하늘의 별 하나는 깨어 있다


너를 모두 잃고
세상이 되돌려주기 기다리며
깊은 잠을 설칠 때
들녘에 집 잃고 헤매는
반딧불 하나 쉬지 않고 길 간다


세상의 반은 세찬 파도지만
또 나머지 반은 섬이다
사랑을 잃고, 길이 보이지 않아
몇 밤을 지새운 뒤에야
진정 이 세상을 껴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