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배설의 노선 - 주종환

마루안 2017. 11. 21. 21:27



배설의 노선 - 주종환

 
 

가끔씩은 똥을 눌 때에도
고문 받는 괄약근에서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성적인 쾌감이 있다
리비도의 누전 같은 쾌감이 있다


특히 소화불량일 때에


직장과 방광, 정랑이 비뇨기적 혼란을 겪으며
생활의 환란, 그 보이지 않는 존재의 파국을
섬광처럼 보여준다
매일 매일의 낙뢰와 같은 세상의 뒤틀린 질서가
가장 은밀한 급소로 접지되는 순간이다


이 보람 없는 나날 속의 피똥들!



*시집, 일개의 인간, 천년의시작








소주와 삼겹살 - 주종환



그동안 참 술과 고기를 많이도 먹었다
특히 인생의 위기와 탈출 때마다 무슨 쓴 약이라도
삼키듯 먹어댔다 술의 캬 시원함, 고기의 앗 뜨거움!
옛날 씨족 사회의 무슨 제의처럼, 그 제의에 불참하게 되면
언제나 소외와 배척이라는 참형을 받는 것처럼
그동안 술과 고기가 있는 자리를 열렬히 탐내었다

술의 캬 시원함, 고기의 앗 뜨거움!
그 화끈한 음양의 투약 없이는 견딜 수 없는 마계도시,
우리는 이 세상의 값비싼 술과 일등급 고기가 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존엄을 도륙하고 그 피를 정치적 식용으로

양조했다 위업 달성이라는 정육점 저울에 올라가는 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알고 무리지어 날뛰었다!
죽음 밖으로 내몰린 주검들, 그 존재의 수수료를 셈하는 장례는
업적도 없이 생을 누린 자들에 대한 영구한 힐난일 뿐,
우리는 모두 죽음 직전까지 내몰리는 금융 사육제의 사냥감이었다

소주와 삼겹살의 정기적인 투약으로, 안위가 보장되지 못한
후세들에게 양질의 고기를 제공하는 우량한 가축으로 남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채식과 명상의 시대에
온 사지와 장기의 힘으로 돈다발 짐수레에 매달리는 이유였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이 먹고 토했던가,
먹고 토하면서 이 생이 그토록 원하는 육질을 얻어냈던가
그 육질을 굽고 태우면서 부딪는 술잔 소리,
그 천근만근의 저울 눈금을 희구하는 건배 소리,
무덤 속에서 또 한번 죽어가는 死者들, 그 영혼의 부활을
매일 밤 생매장하기 위한 당대의 제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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