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꽃 피지 않았던들 - 이홍섭

마루안 2017. 11. 19. 22:45



꽃 피지 않았던들 - 이홍섭

 

그대 사랑
꽃 피는 바람에 사라졌습니다
꽃 피지 않았던들
우리 사랑 헤어졌을까요


밤에 듣는
빗소리, 천 년의 시간을 펼쳤다 접는
저 연잎의 하염없음으로
우리 사랑, 밤을 건넜겠지요


그대 사랑
꽃 피는 바람에 사라졌습니다
꽃 피지 않았던들
우리 사랑 언제까지나
후두둑, 후두둑 피어났겠지요


꽃 피지 않았던들
꽃처럼 피어났겠지요



*시집, <강릉, 프라하, 함흥>, 문학동네

 

 






그늘, 그늘 - 이홍섭



불타오르는 열정도
거꾸러 처박히는 자멸의 몸짓도
일찍이 가져본 적 없다


다만, 지나간 삶이
지금 지나가는 그늘만하겠다는 생각을
어느 다 자란 느티나무 아래서 해본 적이 있다


그때가 언제였는지
지금은 곁에 없는 한 사람을 몰래 떠나보낼 때였는지
어쩌면, 그 훨씬 이전부터였는지


나는 또다시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곰곰이 곱씹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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