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늦가을 - 윤석산

마루안 2017. 11. 16. 23:32



늦가을 - 尹錫山



과원(果園)의 뜨락, 아직은

햇살들

밝은 웃음으로 기어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가을 다하지 못한

열망, 푸른 하늘인 듯 저 멀리 매달려 있습니다.


슬픔이기에는 아직은 이른,

벅찬 기쁨이기에는 너무나 늦은,

우리의 뜨거운 타오름.


이제 하늘 한켠 깊은 볼우물 하나 프르게 파놓고

온몸의 안락함으로 서서히 묻혀 가고 있습니다.


이 가을을 보내는,

우리의 빛나던 금빛 아픔이기도 합니다.



*尹錫山 시집, <밥 나이, 잠 나이>, 황금알








밥 나이, 잠 나이 - 윤석산



지금까지 나는 내 몸뚱이나 달래며 살아왔다.

배가 고파 보채면 밥 집어넣고

졸립다고 꾸벅이면 잠이나 퍼 담으며

오 척 오 푼의 단구, 그 놈이 시키는 대로

안 들으면 이내 어떻게 될까보아

차곡차곡 밥 나이 잠 나이만, 그렇게 쌓아 왔다.






# 우리 시단에는 두 명의 윤석산 시인이 있다. 그 중 尹錫山 시인이다. 1947년 서울 출생으로 한양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으로 등단해서 197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었다. <바다 속의 램프>, <온달의 꿈>, <처용의 노래>, <용담 가는 길>, < 적>, <밥 나이, 잠 나이 >, <나는 지금 운전 중> 등 지금까지 7권의 시집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