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 오은

마루안 2017. 11. 16. 12:02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 오은



누구나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단다 대명사와 조사가 결합하면 가능해진다
나는 누구에 속하는지 자신이 없었다 냄비 속에서 불안이 끓어 넘치고 있었다 배고픔과 배 아픔이 동시에 찾아왔다


아침에는 심술을 부리고 도리질을 쳤다 손길이 다가오면 뿌리쳤다 자발적으로 가난해졌다


언제고 활짝 피어날 수 있단다 대명사와 조사가 결합하면 막연해진다
나는 언제에 속하는지 자신이 없었다 냄비가 뜨거워서 떨어뜨리기 일쑤였다 쉽게 달아오르고 재빨리 식어버렸다


낮에는 냄비 바닥처럼 우는소리를 했다 전체가 까매지고 한 곳은 특히 새까매졌다 우발적으로 우울해졌다


밤이 되었다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 한 말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움찔움찔 몸서리를 쳤다 부끄러워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내일 할 말을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아두었
다 설레서 이불을 또 한번 뒤집어썼다 한여름에도 이불을 꼭 덮고 자야돼 덮어야 안심이 된다


자신이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말했다 명사와 조사가 결합하면 근사해진다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밤에는 착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불을 덮고
가만히 밤이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집, 유에서 유, 문학과지성








풀쑥 - 오은



몸을 열면 질병이
입을 열면 거짓말이
창문을 열면 도둑이, 도둑고양이가 튀어나온다


우편함을 열면 눈알이
내일을 열면 신기루가
방문을 열면 호랑이가, 종이호랑이가 튀어나온다


속이는 것은
속없는 겉이 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