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인연 서설 - 문병란

마루안 2017. 11. 12. 20:01


 

인연 서설 - 문병란

 
 

꽃이 꽃을 향하여 피어나듯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다


물을 찾는 뿌리를 안으로 감춘 채
원망과 그리움을 불길로 건네며
너는 나의 애달픈 꽃이 되고
나는 너의 서러운 꽃이 된다


사랑은
저만치 피어 있는 한 송이 풀꽃
이 애틋한 몸짓
서로의 빛깔과 냄새를 나누어 가지며
사랑은 가진 것 하나씩 잃어 가는 일이다


각기 다른 인연의 한 끝에 서서
눈물에 젖은 정한 눈빛 하늘거리며
바람결에도 곱게 무늬지는 가슴
사랑은 서로의 눈물 속에 젖어 가는 일이다


오가는 인생 길에 애틋이 피어났던
너와 나의 애달픈 연분도
가시덤풀 찔레꽃으로 어우러지고,
다 하지 못한 그리움
사랑은 하나가 되려나
마침내 부서진 가슴 핏빛 노을로 타오르나니


이 밤도 파도는 밀려와
잠 못 드는 바닷가에 모래알로 부서지고
사랑은 서로의 가슴에 가서 고이 죽어 가는 일이다

 

 

*시집, 인연 서설, 시와사회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 - 문병란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는 없다.
더듬어 보면 우리가 만난 짧은 시간 만큼
이별은 급속도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사랑도 삶도 뒤지지 않고
욕심내어 소유하고 싶을 뿐이다.


서로에게 켜져가는 사랑으로
흔들림 없고, 흐트러지지 않는 사랑으로
너를 사랑할 뿐이다.
외로움의 나날이
마음에서 짓궂게 떠나지 않는다 해도
내 너를 사랑함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도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말을 하지 않겠다.
말로써 다하는 사랑이면
나는 너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환한 마음으로 너에게 다가갈 뿐이다.
조금은 덜 웃더라도
훗날 슬퍼하지 않기 위해선
애써 이유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 예전에는 읽고 지나쳤던 시가 이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일 일일까. 가을이 깊어지면 외로움이 되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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