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밀입국 - 전영관

마루안 2017. 11. 12. 20:19



밀입국 - 전영관


 
그는 며칠 간격으로 밤늦은 옥상에 올라왔다

그에 대해 가능한 추리는 야행성이라는 것

나이롱 줄에 매달려 철봉 하는 척

몸을 흔들며 이쪽을 탐색하곤 했었다

다른 세계로 비행하는 동력은 무엇인지

불규칙한 온수가 나온다는 공용 욕실뿐

여기도 그의 두 평짜리 공화국만큼 척박하다

북서풍이 허공의 비명을 들춰내던 밤

스파이더맨 자세로 좁은 먹자골목을 날아오른 그는

이쪽 옥상으로 밀입국했다

성공을 위해 지불한 비용은 목숨

심장에 관통상을 당한 채 굳어버렸다

삼만 원 비싼 반면 온수도 나오는 여기가

그가 꿈꾸던 복지국가였는지

옆 건물 고시원 옥상에서 날아온 셔츠

청색 혈액을 가진 야행성 갑각류처럼

앞주머니 심장 위치에 불펜 잉크가 번져있다



*시집, 바람의 전입신고, 세계사

 

 
 




 
늦은 커피 - 전영관

 


윗바람 횡행하는 밤을 견뎌달라고

잔 먼저 데우고 커피를 탄다


내 자신을 예열한 적 있었나

사랑이 내게 스밀 때

오래 간직하려 나를 먼저 데워놓기는 했었나


당신을 탓하기만 하진 않았나





# 바람 비 커피, 그리움으로 떠도는 바람 때문에 커피가 맛있다. 눈물 비 커피, 그리움이 비가 되어 내리기 때문에 커피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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