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죽음 놀이 - 홍신선

마루안 2017. 9. 29. 21:56

 

 

죽음 놀이 - 홍신선


밤새워 낚은 잡고기들 다시 놓아준다
중환자실인 양 밑바닥에 죽은 듯 엎드렸던 참붕어나
배때기 뒤집고 혼절해 뜬 몇몇 누치들
비실비실 빠져나간다
올 밴 어망이 목숨 가지고 놀던 그 손아귀를 힘껏 열어주었다.
놀이판에서는 부가가치 큰 목숨 놀이가 제일이라고 했나
대안 병원에 일단 입감하면
결국 죽어서야 풀려난다는데
다섯 칸짜리 낚싯대 접으며 나는 수금했던
잡어들 공으로 쉽게 풀어준다
드넓은 수면에는 새벽이 희부연 등짝을 엎어놓고 떠올라 있다
막 풀려난 저 씨알 굵은 한밤 동안의 노역 몇 수,
갓 봉사 나온 호스피스같이
헐뜯긴 상처 침칠로 쓰윽 쓰윽 햝아주는 물결들에게서
통증 식히고 있거나
결리고 쓰린 몸 안에서 시간의 장독 뽑아내는 일
잠깐이리라
놀이 가운데 가장 판 큰 놀이는
죽음 안에 번데기만 한 뼈골로 누워 영겁을 데리고 노는 일
머지않아 누군가 출구를 열어 이곳의 모든 시간들
죽음 안으로 사납게 몰아넣으리라
후미진 무료 낚시터
찍어 먹고 난 초장과 라면 찌꺼기 흩어진,
다음 몇 수 조과를 위해 비워놓은
여기 좌대에는
대낮 동안 누가 또 내려와 죽음 놀이 놀 것인가

 

 

*시집, 우연을 점 찍다, 문학과지성사

 

 

 

 

 

 

참회록 - 홍신선

 

 

지나가거라. 나는 여기 아프지 않게 주저앉아 남으려 하느니
다만 늙고 병들었을 뿐이니
지나가거라 남은 시간들은
퇴역한 무용수처럼 한 벌씩 목숨 벗어던지며 자진하리니
아직오 손으로 더듬더듬 짚어가면 삭이지 못한 살피죽 밑 멍울선 죄(罪)들 만져지느니
지나가거라
언제 나를 던져 피투성이로 너인들 껴안고 뒹굴었느냐 폭발한 적 있느냐
안전선 뒤에 남 먼저 뒷걸음질로 물러서지 않았느냐*
그렇다 잘 가거라
살아서 더는 만날 수 없는 마음의 덧없음에 살 떨릴 뿐

오, 말 탄 자
그대는

 

 

*고 임영조의 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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