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층간 소음 - 전성호

마루안 2017. 7. 30. 15:48

 

 

층간 소음 - 전성호

 

 

지붕 위에 지붕

위층에서 팬티 바람으로 세수하고

아래층에서 속옷 갈아입고

조간신문 읽는다

식사를 하고 아래층에서 똥은 눈다

베란다 유리창마다 번들거리는 햇살 사이

진공청소기 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피아노 두들기는 소리

불협화음도 화음인가

엇물리는 사소한 것들이 칼부림하는 저녁

청국장 끓이는 냄새가

계단을 타고 오를 때쯤

똥개가 짖어대고

노부부가 커튼을 연다

밤이면 구름 깃에 묻힌 달

팔뚝을 빤 모기가

집집의 장딴지를 공격하러 간다고

소식을 전해 올린다.

 

 

*시집, 먼 곳으로부터 먼 곳까지, 실천문학사

 

 

 

 

 

 

솜방망이 꽃 - 전성호


어린이 놀이터 풀숲
들여다보지 않아도, 아침이면
할아비 손에 엉깃엉깃 끌려온 진돗개
굽은 허리로 배설 마친 뒤에야
하루가 일어선다

아이들 맞을 빈 모래판
깨작거리는 까치들
부리로 햇살 토해내는 아침
오늘은 성공할까
할아비는 그네에 진돗개를 겨우겨우 태워
아침을 밀어올린다
아니나 다를까
진돗개 낙마하듯 발랑 뒤집어지는 순간
분홍 앵두꽃
빤히 보며 깔깔거린다

미끄럼틀 난간이 이슬에 젖을 때쯤
나는 출근하지만
진돗개 용변 장소가 보이는 풀숲
키 작고 노란 솜방망이 꽃
다음 날 찾아올 할아비와 진돗개를 위해
목줄기 쭉 빼고 키를 키우고 있다.

 

 

 

 

# 전성호 시인은 1951년 경남 양산 출생으로 동아대 경영학과,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정을 졸업했다. 2001년 <시평>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캄캄한 날개를 위하여>, <저녁 풍경이 말을 건넨다>, <먼 곳으로부터 먼 곳까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