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수상한 계절 - 원무현

마루안 2017. 11. 3. 12:13



수상한 계절 - 원무현



저기 불붙는 산
여기 불타는 마음


우짜꼬


저 산 너머엔 일당이 사만 원
그 돈 쥐면 빈 독에 쌀이 차고
기일에 조기가 한 마리


우짜마 좋노


형이한지 형이상인지
그까짓 거 훌훌 벗어던지삐고
고마 한 마리 산짐승이나 되삐까
만산홍엽 저 불길 속에 뛰어들어
발정 난 몸뚱어리 확 태웠삐까


담배 한 개비면 일터 가는 버스가 도착하는데
유혹도 이런 유혹은 난생 첨인기라
달리 표현할 말도 없고
그저 싱숭생숭한데
문득 떠오르는 한마디
좆 됐다!


아흐 지금은 산이 불붙고 마음이 불타는 때
좆 됐다 좆 됐어
진퇴양난 그 점잖은 말은 까맣게 잊고
인격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말
그런 말이 튀어나와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풍요의 계절


우짜꼬
이 가을



*시집, 강철나비, 빛남출판사








변비 - 원무현



"낯선 이가 와도 짖지 못하는 것은 된장을 발라야 해"
이 말은 내 밥이다
주인 가족 사이에 불협화음이라도 나는 날엔 식단은 더 푸짐해진다
너나없이 나를 걷어차며 "개 같은 집구석"
별명이 색시인 주인 아들도 언제부턴가
심심풀이 땅콩 삼아 던지는 "개 같은 집구석"
개 같은 집구석을 받아먹던 내가
며칠 전부터 똥 눌 때마다 신음을 싼다
소화가 되지 않은 채 멀뚱멀뚱 웅크린
개 같은 아버지, 개 같은 어머니, 개 같은 자식
개 같은 집구석을 밀어내려니 찢어지는 똥구멍
피가 난다
이런 개 같은





# 사람 냄새를 풍기며 몸에 확 달라 붙는 시편이다. 자고로 시는 이렇게 쓸 일,, 짧은 자서도 공감이 간다. 자서이자 자서전 같은 문장이다. 네 줄의 자서전도 읽을 만하다. 자서는 가능한 짧게 쓸 일이다. 그는 초기 시집에서 자서를 구구절절 참 길게 썼다.


*자서
촉수가 관념을 향해 반응하고 있을 때
그 간사함으로부터 나를 일깨우는 것은
발 냄새, 입 냄새, 땀 냄새다.
그 냄새들이 나지 않는 것은 시의 몸이 아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일월의 노래 - 이상국  (0) 2017.11.03
어떤 흐린 가을비 - 류근  (0) 2017.11.03
가을비 - 이은심  (0) 2017.10.03
죽음 놀이 - 홍신선  (0) 2017.09.29
훌훌 다 털고 - 조항록  (0) 2017.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