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가장의 근심 - 문광훈

마루안 2017. 5. 28. 04:48

 

 

 

제목에 끌려 집어든 책인데 제대로 골랐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버지 역할을 안내하거나 고단한 중년의 외로움을 위로하는 책은 아니다. 목록을 보면 지루한 것 못 견디는 나같은 무식한 사람 주눅 들기 충분한데 생각 외로 재밌게 읽힌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없는 교양을 한 바가지 실컷 마신 기분에 배가 부른 느낌이다. 세상이 고달프거나 울적할 때면 술과 여자로 푸는 사람이 있는 반면 팍팍한 삶을 견디면서 독서와 글쓰기로 헐렁한 내면을 단속하는 사람이 있다. 후자에 속하는 문광훈 선생의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삶이 풍성한 인생인지를 깨닫게 한다.

저자의 진솔한 내면을 알 수 있는 정갈한 문장이 읽는 이를 더욱 진지하게 만든다. 책 제목 <가장의 근심>은 카프가의 글 제목에서 따왔다. 그 대목이 참 인상적인데 저자의 두 아들 이야기다.

삼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간 큰 아들과 고등학교 때 반에서 꼴등을 하는 작은 아들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아이 기르기에 실패한 건지 아직도 모르겠단다. 내가 보기에 선생은 자식 농사를 아주 잘 지었다.

저자는 독문학을 전공했고 독일에서 유학을 했다. 그래서 이 책에도 독일과 연관된 글이 많다. 카프카, 헤르만 헤세, 브레히트 등 작가와 루소, 칸트 같은 철학자를 아주 쉽고 명료하게 삶과 연결시켜 준다. 당연 음악가도 여럿 언급된다.

특히 독일 유학중에 알게 된 현지 독일인 의사와 주고 받은 편지 내용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자기 삶을 살아라. 이 책을 핵심적으로 압축한 문장이라 해도 되겠다. 가장의 근심은 아들이 공부를 못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이 자기 삶을 살지 못할까 걱정되기 때문이 아닐까.

독일 유학 중에 함께 공부한 독일 친구에게서 배운 인생담도 인상적이다. <난 충분하다네>라는 뜻을 가진 독일 말로 자신을 위로하던 독일 친구는 각종 아르바이트에 쫒기면서 공부를 했지만 궁해 보이기보다 되레 저자가 너무 편하게 공부하는 것 같아 미안했단다.

책이 마음의 양식이란 말은 독서에서 얻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책이면 다 책인가. 내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지 않고 까탈스러울 정도로 가려 읽는 것도 좋은 책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이런 책이라면 마음의 양식이 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