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대리사회 - 김민섭

마루안 2017. 5. 16. 07:17

 

 

 

어쩌다 대학 강단에 섰던 젊은 교수가 대리운전을 시작했을까. 책 입구에서 그 이유를 절절하게 밝히는 대목에 공감이 갔다. 많은 정보로부터 대학 강의 절반을 담담하는 시간 강사들이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에 고통 받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한번 정교수가 되면 정년까지 보장이 되는 철밥통을 소유할 수 있기에 교수에 목을 매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어느 분야든 들여다 보면 불합리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기에 교수 사회라고 공정하기만 하겠는가. 존경 받는 교수도 있지만 철밥통을 믿고 연구를 게을리하는 함량미달의 교수가 부지기수다.

대리기사를 하면서 저자는 깨닫는다. 이 사회가 많은 부분에서 남의 운전석에 앉아 있다는 것을,,,, 돈만 주면 술 취한 자신을 대신해 집앞까지 편안히 차를 주차해 주는 대리기사는 우리 사회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클릭 한 번으로 오늘 주문한 농산물이 내일 새벽에 대문앞에 놓이는 세상이다.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실로 놀라운 노동력이 숨어 있다.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부는 그렇다치고 주문을 모아 분야별로 포장해 밤새 분류하고 동트기 전에 배달에 나선다. 주문한 사람은 침대에서 자는 동안 누군가는 잠도 안자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택시 기사가 말하길 자신이 앉아 있는 운전석이 세상의 축소판이란다. 그도 그럴 것이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승객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순히 차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 중에 많은 정보를 흘리고 간다. 그 속에 작금의 정치와 경제와 문화가 담겨 있기에 세상 축소판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는 경향이 있다. 택시 기사 또한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들을 것이다. 살면서 균형을 맞추기 쉽지 않은데 김민섭 저자는 남의 차 운전석에서 나름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진상 손님 앞에서도 미워하는 마음보다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대리 사회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아무리 차별 없는 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외친들 신자유주의 물결은 평등과 완전한 정규직을 완강히 거부한다. 아들 분윳값을 보태기 위해 길거리로 나서야 했던 저자는 생활고의 고단함을 단단히 경험했다. 그러면서도 세상을 향한 쓸데없는 분노를 분출하지 않는다.

저자는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해결하면서 운행 일지를 꼼꼼히 기록했다. 애초에 책을 쓰기 위한 것이었는지 몰라도 문장력이 웬만한 소설가 뺨을 친다. 세상의 부조리를 지적하면서 따뜻하고 희망이 담긴 글이 독자의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