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 - 정성기

마루안 2017. 6. 15. 13:25

 

 

 

아주 평범한 제목을 달고 나온 책이지만 내용은 심각하다. 예순 다섯 할아버지가 아흔 둘 어머니를 위해 차린 밥상 이야기다. 여기까지는 심각하게 들리지 않지만 치매에 걸린 구순 어머니를 칠순을 앞둔 아들이 어머니를 돌보면서 만들었던 음식이야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스머피 할배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상 일기>라는 부제도 참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책 내용은 날로 악화되는 어머니의 치매 증상과 싸우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고통스런 일도 남의 이야기는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는 법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인내심에 감탄을 했다.

저자는 책에서 어머니를 징글맘으로 부른다. 싱글맘의 노인 버전이라 할까. 어머니는 다섯 자식을 키웠고 남편을 먼저 떠나 보냈다. 저자 또한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직접 돌보기로 한 것은 아버지가 요양원에서 임종도 없이 세상을 떠났기에 그런 한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가볍게(?) 시작했다. 길어야 1년 정도 살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도 있었고 스머피 할배도 그 정도의 고생은 각오를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조금씩 상태가 나빠지면서도 10 년째 아들과 함께 하고 있다.

치매 환자는 본인보다 가족의 고통이 심하다. 나도 친구의 어머니가 치매로 몇 년간 아들의 등골을 완전히 빼먹고 돌아가신 것을 봤기에 그 고통을 충분히 이해한다. 친구는 병수발 4년이 넘자 진이 빠져서 제발 어서 떠나라고 매일 기도했다고 했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매일 밤 어머니가 화장실로 거실로 돌아다니면서 괴성을 지르고 욕설을 하는 통에 잠을 못자서 온갖 질병에 시달린다. 이빨이 9개나 빠지고 위장병으로 고통을 받았다. 치매 걸린 어머니보다 자신이 먼저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심지어 한강에 빠져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수발에 지쳐 어머니에게 악담을 퍼붓기도 했다. "남편 잡아 먹고 이제 아들까지 잡을 셈인가. 제발 그만 떠나세요!" 저자는 곧 후회를 하지만 인내심이 바닥 나면 자기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그러면서도 아들은 어머니를 위해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삼시 세끼를 봉양한다. 처음에는 엉터리 음식을 만들어 어머니가 밥상을 밀치며 야단을 치기도 했다. 긴 시행 착오 끝에 조금씩 음식 솜씨가 늘었고 이제는 새로운 음식을 개발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안타까움과 미소가 번갈아 나오는 것도 저자의 힘든 일상과 어머니를 위한 음식 만들기의 기쁨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이런 아들의 효성도 부모의 영향 탓이 클 것이다. 징글맘은 비록 치매에 걸렸지만 자식 농사 잘 지은 덕을 톡톡히 본다.

누군들 정신줄 놓고 싶겠는가마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질병이 치매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 내게 치매가 온다면 심해지가 전에 주변에 고통 주지 말고 조용히 생을 마감하겠다. 慈悲死가 힘들면 自費死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 입에 들어오는 맛있는 밥이 남의 고통으로 얻어진 것이라면 그것이 입에 달게 들어 오겠는가. 이래저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