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봄날은 간다 - 김정수

마루안 2017. 5. 10. 22:01



봄날은 간다 - 김정수



불쑥
그가 찾아왔다
난 그가 첫사랑인지 긴가민가했지만
그는 내가 첫사랑인 게 맞다고 했다
그가 첫사랑이라 말하는 순간
붉게 젖은 그의 눈가에서
꽃잎이 떨어지는 걸 본 것도 같다
하지만 그건 나의 감정이 아니므로
미안해할 필요는 없었다 꽃이 피고 지는 건
꽃나무의 집요한 집착일 뿐
노천에서 밤을 지새운 것들 탓은 아니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별이 찾아왔다 가고
바람은 또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로 불고
불쑥 그가 찾아왔듯
불현듯 그를 찾아갔지만
그걸 미련이라 부를 수 있는 건지
나는 그걸 무어라 이름 붙였는지 기억할 순 없지만
꽃나무와 그늘 사이에
자전거 한 대 지나갔고 슬픔 한 장
체인에 감겼다 바람은 또
한순간에 왔다 사라지고
그렇게 한 계절이 후일담처럼 흐르고
나는 또다시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봄날이 시들어 가고



*시집, 하늘로 가는 혀, 천년의시작







봄, 어지러운 외면 - 김정수



4월의 머리와 5월의 어깨 사이로 현기증이 찾아왔다 '혹시나'와 '그래도'사이에서 고민하다 병원을 찾았다 빈 의자가 4자로 보였다 먼저 피검사부터 하자는 말에 소심해진 소매를 걷어붙였다 노란 고무줄로 팔뚝을 동여매자 죽음이 마려웠다 약솜으로 쓱쓱 문지르는 의사의 눈빛으로 무료한 시간이 흘러들었다 미늘도 아닌 주삿바늘이 습관처럼 일상처럼 팔을 찌르려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갤 돌렸다 몸이 먼저 외면했다 살과 피로 혼탁해진 오후 6시가 툭 끊어졌다


저녁놀 스민 창가에
확,
피비린내 풍겼다






# 김정수 시인은 1963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서랍 속의 사막>, <하늘로 가는 혀>가 있다. 현재 빈터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