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이렇게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 오인태

마루안 2017. 5. 3. 00:33



이렇게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 오인태



다시 봄이 오고
이렇게 숲이 눈부신 것은
파릇파릇 새잎이 눈뜨기 때문이지
저렇게 언덕이 듬직한 것은
쑥쑥 새싹들이 키 커가기 때문이지


다시 봄이 오고
이렇게 도랑물이 생기를 찾는 것은
갓 깨어난 올챙이 송사리들이
졸래졸래 물속에 놀고 있기 때문이지
저렇듯 농삿집 뜨락이 따뜻한 것은
갓 태어난 송아지, 강아지들이
올망졸망 봄볕에 몸 부비고 있기 때문이지


다시 봄이 오고
이렇게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새잎 같은 너희들이 있기 때문이지
새싹 같은 너희들이 있기 때문이지


다시 오월이 찾아오고
이렇게 세상이 사랑스러운 것은
올챙이 같은, 송사리 같은 너희들이 있기 때문이지
송아지 같은, 강아지 같은 너희들이 있기 때문이지



*시집, 아버지의 집, 고요아침


 




 


김씨의 봄날 - 오인태

 

 
봄날이 간다 지난 여름에도 가고, 가을 한 때에도 갔던 김씨의 봄날이 이 겨울날, 철없이 불려와 또 이렇게 가고 있는 중이다 벌써 대여섯 해 되었다던가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자던 알뜰한 그 맹세, 십 년도 채 못 지키고 그의 연분홍치마는 눈망울 새까만 자식 둘마저 내던진 채 어느 산제비 같은 놈을 따라 역마차를 탔다는데,


옷고름 대신 허구헌 날

때 절은 물방울무늬 넥타이를 씹어가며

봄날을 불러, 보내는 김씨의 생은 오

늘 아침에도 중성세제, 그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일어서는 거품처럼 부글거렸으리라


남들은 뽕도 따고 님도 본다는데, 뽕도 잃고 님도 잃은 전직교사, 지금은 그의 연분홍치마를 대신하여 보험설계사가 된 김씨, 마른하늘 벼락처럼 뒤집어쓴 흙탕물 씻을 길은 아직 멀고, 이렇듯 나는 또 하릴없이 그의 삐걱거리는 노래에 맞춰 청노새 방울 대신 속없는 탬버린이나 짤랑대어주지만, 내내 울퉁불퉁 자갈길을 엎어질듯 달려가는 그의 생에 그만 실없어져 더 이상 이 얄궂은 운명의 박자를 맞춰줄 수가 없다 술이나 마시자


김씨, 그의 어깨가 아닌 봄날 꽃잎처럼 무너진다


 
 



오인태 시인은 1962년 경남 함양 출생으로 진주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경상대 대학원에서 문학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 진보적인 문예지 <녹두꽃>으로 등단했고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었다가 복직했다. 시집으로 <그곳인들 바람 불지 않겠나>, <혼자 먹는 밥>, <등 뒤의 사랑>, <아버지의 집>, <별을 의심하다> 등이 있다.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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