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아름다운 독선(獨善) - 서정춘

마루안 2017. 5. 1. 18:23

 

 

아름다운 독선(獨善) - 서정춘


그러니까,
나의 아름다운 봄밤은 저수지가 말한다
좀생이 잔별들이 저수지로 내려와
물 뜨는 소리에 귀를 적셔보는 일
그 다음은, 별빛에 홀린 듯 홀린 듯
물뱀 한 마리가 물금 치고 줄금 치고
一行詩 한 줄처럼 나그네 길 가는 것
저것이, 몸이 구불구불 징한 것이 저렇게
날금 같은 직선을 만든다는 생각
그래서는 물금줄금 직선만 아직 내 것이라는 것
오 내 새끼, 아름다운 직선은 독선의 뱀새끼라는 것


*시집, 귀, 시와시학사

 

 

 

 

 

 

봄밤 - 서정춘


어렵사리, 나는야 조랑말을 부리는 말집 큰말집 아들이었지러
어느 봄날 실비 그치고 일없는 해질녘 윗말집 아랫말집 또 작은말집 어른들은 고의춤에 손 넣고 우리집 바깥 측간이 딸린 마굿간 옆을 오종종 앉아서 탱탱한 가짓빛 말좆 세우느라 그 눈빛들 뜨거워져 있었지러
"콩 볶아줄게 배 때려라
그렇지 배 때렸다"
또 볶아줄게 또 때려라
그렇지 또 때렸다"
자그마치 어른들 넉살 떠는 소리에 홀라당 뜨거워진 내 열 몇 살 얼떨결은 팔뚝에 주먹이 불끈 달린 말좆 세우며 비린 봄밤을 마구 달렸지러 힝, 히힝!

 

 



*시인의 말

시, 열 여자를 만나면
시, 아홉 여자가 나를 버렸다
시, 한 여자도 곧 나를 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