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봄날은, 갔네 - 안성덕

마루안 2017. 4. 30. 06:37



봄날은, 갔네 - 안성덕



우하변에 매화 만발하고 좌상귀 복사꽃 분분하네


계란 삶고 김밥 말아 꽃구경 한 번 못가고 봄날은, 갔네
산번지 까치집도 좋으니 문패나 한 번 걸어보겠다고 알탕갈탕
사이다 한 병 못 먹인 딸아이는 아직도 목이 메는지 자주 제 가슴팍을 치네


앞 장강 물이 뒷물에 밀려나듯 청춘이 흘렀네
대마불사도 헛말, 축도 모르는 채 덩치만 키운 아들놈은 여태 출구를 못 찾네 오 년째 미생마네


매화 놓치면 복사꽃 구경 가고 복사꽃 놓치면 매화 보러가겠네 무서리 친 늦가을 아닌 꽃놀이에, 두견화는 덤으로 꺾고 화전도 두어 장 부쳐 보려네


좌상귀 복사꽃 한 점 따고, 우하변 매화 한 점을 다 담네
다 저녁에 반상은 꽃피는 봄날이네 겨우 환갑에 양로당 출입은 좀 뭣하고 명문기원 구석에 박혀 짜장면 내기 돌은 놓네


사는 일이 종당에 한 채 집짓기라, 이만하면 내 인생 근근이 계가는 될까도 싶네 꽃놀이패 덕에 사석보다 두어 집 더 지은 것 같네



*안성덕 시집, 몸붓, 시인동네








속, 편안합니다 - 안성덕



세검정으로 읽었네
쉰 고개를 넘으니 영락없이 당달봉사네
비데의 세정을 세검정으로 읽는 아침
거사를 끝낸 사내들이
피 묻은 칼을 씻었다는 자하문 밖 세검정에서
구린 항문을 씻네
물줄기를 리듬으로 할까 마사지로 맞출까
고민을 하네
무딘 부엌칼도 한 번 못 세워주면서
그저 밑이나 씻고 있네


허나 바꾸어 생각하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닌 성도 싶네
글쎄 이 엄동에
피 한 방울 안 묻힌
빼보지도 못한 칼집 속의 칼은
왜 씻어?
경마 잡히듯 따끈따끈 달궈진 변기를 타고 앉아
똥끝 타던 어제를 깨끗이 비우네
구린 똥구멍을 씻네
괄약근 움찔거리며 지그시 눈을 감는 이 맛이야,
아무나 알려구 아암
속, 편안합니다





# 안성덕 시인은 1955년 전북 정읍 출생으로 원광대 문예창작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톡특한 제목이 인상적인 <몸붓>이 첫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