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벚꽃 개화 예상도를 보며 - 손택수

마루안 2017. 4. 11. 06:01

 

 

벚꽃 개화 예상도를 보며 - 손택수

 

 

 

서귀포에 벚꽃이 피는 건 3월 17일,
어머니 사시는 부산 이기대 바다는
23일이다


이기대 언덕에서 수목장을 한 아버지의 벚나무는
예상대로라면 그날 피어날 것이다


바다를 건너오는 데 무려 일주일이나 걸리다니,
벚나무는 동력선이 아니라 옛날 방식대로
돛단배를 타고 오나보다


그 일주일 동안 어머니는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올라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겠지
이제나저제나 벚나무에 상륙할 꽃들을
기다리고 있겠지


세상에는 꽃의 속도로 잊어야 할 것들이 있어서,
꽃의 속도가 아니면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있어서

 


*시집,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창비
 

 

 

 

 

 

대꽃 - 손택수

 

 

꽃을
참는다


다들 피우고 싶어 안달인 꽃을
아무 때나 팔아먹지 않는다


참고 있는 꽃이 꽃을 더 예민하게 한다면
피골이 상접한 저 금욕을 이해하리라


필생의 묵언정진 끝에 임종게 하나만 달랑 남긴 채
서서 입적에 드는 선승처럼 깡마른 대나무들


꽃이 피면 죽는 게 아니라
죽음까지가 꽃이다


억누른 꽃이 숲을 들어올리고 있다
생의 끝 간 데까지 뻗어올린 마디 위에서 팡 터져나오는 대꽃

 

 

 

 

 

# 손택수 시인은 1970년 전남 담양 출생으로 경남대 국문과, 부산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호랑이 발자국>, <목련 전차>, <나무의 수사학>,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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