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복사꽃 화전(花煎) - 김명리

마루안 2017. 4. 12. 03:40

 

 

복사꽃 화전(花煎) - 김명리


복사꽃 철 맞아 소풍을 갔더랬다
나무에 기대어 서서
봄날은 간다~
누군가 휘파람에 가까운 노래를 불렀었는데

복사꽃 그늘 속으로
마음 몰아치던 저 봄날

뺨이 패이도록
올해의 봄바람은 더욱 사납고
그해의 복사꽃은 죄다 져버렸으니

남아 있는 향기로 화전이나 부칠까 어쩔까
하는 사이
서러운 그이들 뿔뿔이 떠나고
화톳불 삼킨 듯 봄꽃의 속내는 달아오르고

비 듣는 윤사월에 턱 고이고 앉은,

세월은 사무치는 사람의 가슴에
몇 점의 붉은 핏방울로 복사꽃을 새겼다


*시집, 불멸의 샘이 여기 있다, 문학과지성


 




綠雨 - 김명리


4월의 비는
채 꽃송이 벌지 않은 백합나무와
아직은 연푸른 落雨松,
몰아올 낙엽과, 침엽의 두근거림 사이에서 시작되지

청도 지나는 봄빛,
헐티재 너머 각북에 내리는 저 실핏줄,

송화 가루에 눈시울 붉어진 나비 걸음으로

내 섰는 여기는
연두에서,
잎잎 초록으로 넘어가는 강물의 세찬 굽이 속이라네

물머리 돌아 흐르는 꽃 붉은 산비탈
밀짚모 눌러쓴 홍안의 백수광부여
늙은 몸이 맥없이 휘청거리는
아스라한 벼랑 끝끝까지
넘치게 술잔 기울이는 저 봄빛,

다시는 떠나보내지 않으리
단단히 묶어두리, 저 봄빛!
상처의 옹이마다 아픈 내 몸을 거기 누이리
새가지 새가지마다 불지르리

슬픔이여, 하룻밤도 돌아눕지 않으리


 

 

# 김명리 시인은 1959년 대구 출생으로 198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물 속의 아틀라스>, <물보라 낮은 집>, <적멸의 즐거움>, <불멸의 샘이 여기 있다>, <제비꽃 꽃잎 속>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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