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복사꽃잎 아래 - 손수진

마루안 2017. 4. 10. 18:07



복사꽃잎 아래 - 손수진



심천면 심신산골에
복숭아 농장을 하는 김씨는
농장 한 귀퉁이에 닭과 오리를 키우는데요
수탉 한 마리가 암탉 열다섯 열여섯 마리씩 거느리고 산다는데요
가끔 젊은 수탉이 암탉을 한 마리씩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네요
늙은 수탉은 패인 마음만큼이나 서슬이 퍼래져서
두 발로 흙바닥을 파며 한쪽 날개 죽지 펴서 빙빙 돌다가
돌연 오리 등에 올라타고 꽥, 꽥 소리를 지른다네요
그러면 오리는 꽁지 빠지게 도망을 친다는데
몇 해 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연변 여자가 생각나면
종일 허방을 딛는 듯 허적이다
해질녘
술병 하나 들고 사립문 들어서면
꼬리치며 달려드는 흰둥이 옆구리를
냅다 걷어차고 패악을 떠는데
그러다가도 수탉이 하는 짓을 보면  궁금증이 인다네요
오리가 낳은 알이 부화하면 그 새끼는
머리를 웅덩이 속으로 처박을까요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번 쳐다볼까요



*시집, 방울뱀이 운다, 천년의시작








씨받이 - 손수진



늦가을, 빈 고택
매미소리도 귀뚜라미소리도 한생을 건너간 자리
한때 푸르고 무성했을 나뭇잎만
신발대신 댓돌위에 수북하다
저물녘 찾아 올 손님이라도 있는 걸까
대청마루에 발을 드리우고
툭, 툭 오동잎 지는 소리에
미세한 떨림으로 반응하는 왕거미 한 마리
쇠락한 가문의 혈통이라도 이어 볼 양인지
검은 점박이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도도한 눈빛 내려 깔고 동그랗게 등을 말고 있는
노랑무늬 암컷의 등을 훑는다
결코 서두르거나 불안한 기색 없이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또 다른 암컷 한마리가
앞발을 공손히 모으고
그 은밀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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