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안타까운 꽃 - 원무현

마루안 2017. 4. 3. 01:17



안타까운 꽃 - 원무현



똥 묻은 속옷을 동백나무 아래 감추며
향기를 맡는 척 떨어진 꽃송이를 줍는 어머니
생각나는지요
어릴 적 급체를 몹시 앓고 난 뒤
그 나무 아래서 얼굴이 빨개지도록
똥구멍을 열었다 닫았다 했잖아요
어머니도 제 곁에 쪼그려 앉아 빨개졌지요
그러다 보면 내가 내 코를 틀어막는
한 무더기 똥,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싸쥐고선
모름지기 사람은 똥색이 고와야 하는데
이렇게 붉어지고 있으니 여간 다행 아니라며
꽃송이를 든 사람처럼 환하게 웃으셨던


아 한땐
당신이 들고 계신 그 꽃송이보다 붉고 뜨거운
달거리 꽃을 피워내셨던 어머니
그러나 부끄러워 마세요
몰래 감추는 그것, 똥도 무엇도 아닙니다
고목이 피워낸 안타까운 꽃인 것을요



*시집, <사소한 아주 사소한>, 지혜








花葬 - 원무현



정월 초하루부터 법을 어긴다
선택의 여지없이
마지막에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매장이나 화장이지만
지켜드리지 못한 유언,
散骨을 하려 아버지를 연다
관 뚜껑을 열어도
肉脫한 모습이 좀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직 미명이기 때문일까
빛을 다시 보기 위해
오랜 동안 살을 뜯어내야 했던
고통의 시간들이 너무나도 두껍게 아버지를 덮고 있어서일까
지평선이 회초리를 들어 볼기짝을 두들겨야 일어나던 아침 해가
오늘은 재빠르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실낱같은 빛을 보았을 때를 잠시 떠올리는 동안
어둠의 시위를 떠난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해의 뼈, 빛을 꿴다
비로소 드러나는 아름다운 모습
아버지,
육탈의 진수를 담보로 절구질을 요구하신다
정월 초하루에 흰 꽃잎 날린다






# 빙빙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이런 시에 마음이 간다. 작금의 시판이 대체 뭔 소리인지 도통 이해불가인 시가 많아 무식한 나로써는 소화하기가 벅차다. 뜬구름 잡는 시를 억지로 읽느니 차라리 시읽기를 끊겠다. 원무현의 시는 쉽게 읽히면서 애틋한 여운이 길게 남는다. 몸으로 삶을 사랑하면 이런 시가 나오는 걸까. 이런 시를 읽고 나면 더욱 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