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가려운 봄 - 이성목

마루안 2017. 4. 3. 01:16



가려운 봄 - 이성목



가렵다 가려워서 등을 긁는다
나이가 들수록 손닿지 않는 곳이 늘어난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려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를
고통스럽게 한다 추억처럼
손톱 밑에 피 묻는 살점과 살비듬이 낀다
나뭇잎 검불 한 줌 긁어낸다 하지만
마른 등에 뾰루지 걷잡을 수 없다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것들
바라보면 포경 수술을 하고 싶다
껍데기를 벗겨 내는 일 말이다
오늘은 살가죽에 뒤덮여 있을 그곳이
가렵다 더 낳을 새끼가 있다는 듯
가려워도 긁지 못한다 손이 부끄럽고 민망하다
나이가 들수록 손 댈 수 없는 곳이 늘어난다
하지만 앞 뒤 사정 봐주지 않는다
그는 몸 비틀어 보기도 하고 엉덩이로
허공을 내저어 보지만
멈추지 않는다. 얼음장 밑 개울물은,
튼 살 위로 돋아나는 뾰족한 생각들은



*시집, 뜨거운 뿌리, 문학의전당








봄, 알리바이 - 이성목



여자의 몸에서 휘발유 냄새가 났다. 담배에 불을 붙이며
꽃들은 만만한 나뭇가지를 골라 호객을 일삼는다. 나무들은 비틀거리며 꽃 가까이서 꽃값을 흥정했다. 이미 몸에 불을 당긴 꽃잎이 재처럼 떨어졌다. 꽃을 만났던 나무들은 순한 잎의 옷을 걸쳐 입었다. 내 몸에서도 휘발유 냄새가 났다.
기억한다.
나는 붉고 여린 수술을 내밀었을 것이다. 목련은 순백의 꽃봉오리를 활짝 열었으므로, 세상과 나는 서로 결백했을 것이다.
기억한다.
그 해 3월 마지막 날, 영등포 선반 공장 뒷골목, 홍등가, 절삭유 질펀한 바닥, 생의 마디가 손가락처럼 잘려나가던 어둠 속, 늙은 가로수처럼 서서 전화를 했으며, 안산행 총알택시를 탔다.


멀고도 아득했던
불혹에 닿아 몸의 곳곳에 만져지는 꽃자리 아직도 아프지만
그곳에는 꽃도 나무도 없었다. 나도 그때는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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