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시간의 손 안에서 - 전대호

마루안 2017. 3. 30. 07:34

 

 

시간의 손 안에서 - 전대호

 

 

오직 시간만이 우릴 지배하고 있을 때

하여, 우리 자신에 대하여 아무것도

심지어 생사조차도 확인할 수 없을 때,

 

벗이여 잘 보자

시간의 손이 작용하는 방식을,

시간은 모든 산 것들을 갈라 놓고 모든

죽은 것들을 모은다

 

우리 지금 헤어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우린 아직 살아 있다

두려움 없이 쪼개지자

 

우리 산화하지 않은 단면을 보여 주자

보여 주고 서로 용기를 얻자

오직 시간만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동안

오직 산 것들만이 갈라진다

가라! 울지 말고.

 

 

*시집, 가끔 중세를 꿈꾼다, 민음사

 

 

 

 

 

 

별똥별 - 전대호

 


별똥별이 천구에
한 십오 도쯤 원호를 긋고 사라진다


이렇게 멀리 있어
내 귀와 눈은 느끼지 못했지만
아주 높은 곳에서는 장엄했으리라,
공기를 찢는 그의 속도가 쏟아 놓는 소리
불타 오르는 그의 몸뚱이가 내뿜는 빛


그 장엄함 앞에
거미줄처럼 어둠 속으로 길게 어어져 있던
그의 이탈의 궤적도
일순간에 불타 없어졌으리라
모든 별들 침묵했으리라


그리고 그가 보여 준 마지막 궤적을 이어
나는 이렇게 적어야겠다:
방금 그가 별들의 무리 속으로 돌아갔다고.

 

 

 

# 전대호 시인은 1969년 경기도 수원 출생으로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성찰>, <가끔 중세를 꿈꾼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