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고향 - 황지우

마루안 2017. 3. 3. 21:45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고향 - 황지우



고향이 망명지가 된 사람은 폐인이다.
출항했던 곳에서 녹슬고 있는 폐선처럼
옛집은 제자리에서 나이와 함께 커져가는 흉터;
아직도 딱지가 떨어지는 그 집 뒤편에
1950년대 후미끼리 목재소 나무 켜는 소리 들리고, 혹은
눈 내리는 날, 차단기가 내려오는 건널목 타종 소리 들린다.
김 나는 국밥집 옆을 지금도 기차가 지나가고.
나중에는 지겨워져서 빨리 죽어주길 바랐던
아버지가 파자마 바람으로 누워 계신
그 옛집, 기침을 콜록콜록, 참으면서 기울어져 있다.
병들어 집으로 돌아온 자도 폐인이지만
배를 움켜쥐고 쾡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신 아버지,
삶이 이토록 쓰구나, 너무 일찍 알게 한 1950년대;
새벽 汽笛(기적)에 말똥말똥한 눈으로 깨어 공복감을 키우던
그 축축한 옛집에서 영원한 출발을 음모했던 것;
그게 내 삶이 되었다.
그리움이 완성되어 집이 되면
다시 집을 떠나는 것; 그게 내 삶이었다.
그러나 꼭 망명객이 아니어도 결국
폐인들 앞에 노스탤지어보다 먼저 와 있는 고향.
가을날의 송진 냄새나던 목재소 자리엔 대형 슈퍼마켓;
고향에서 밥을 구하는 자는 폐인이다.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정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 황지우



초경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 줄 수도 없고
생이 끔직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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