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승부처 - 오은

마루안 2017. 2. 21. 20:07



승부처 - 오은



안팎에 사람이 있다


안에 있어서 불안한 사람
창분 밖을 흘끗 내다본다
아무도 없으면
시간을 벌 수도 있다


안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들어갈 데가 없다
막혀 있다고 느낀다


재떨이에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처럼
초라하고 고단하다


밖에 있어서 외로운 사람
건물을 올려다본다
아무도 없으면
시간에 쫓길 수도 있다


밖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나갈 데가 없다
갇혀 있다고 느낀다


재떨이에서 벗어난 담뱃재처럼
외롭고 서럽다


위로 올라갈 수도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는
층계참에서


사람이 사람을 기다린다
사람이 사람을 경계한다


안팎과 무관한
벽과 문이
촉(觸)을 바짝 세우고 있다



*시집, 유에서 유, 문학과지성








서바이벌 - 오은



우리 중 하나는 이제 떨어진다는 거죠?
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하나만 중요했다


살다의 반대말은 죽다가 아니야
떨어지다지
내가 살아남았다는 것은
누군가는 떨어졌다는 것이다


오늘부로 너는 우리에서 이탈하게 된다
우리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된다


감정은 수용성(水溶性)이라
떨어진 자는 떨어져서 울고
떨어지지 않은 자는 떨어지지 않아서 운다


편성표가 말한다
슬퍼할 시간을 딱 일주일 주겠다


그 사이
지난주에 네가 살아서 열광하던 사람들이
너를 집요하게 비난할지도 모른다
너는 갈수록 가볍고 희미해질 것이다


네가 없는데도
남은 자들은 우리를 만든다
취향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비슷한 것이 하나 없는데도
살아남았으니까
또 한고비를 넘겼으니까
일주일 동안 우리는 함께 슬퍼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규모는 점점 작아진다
하나에 가까워진다


우리 중 하나는 이제 떨어진다는 거죠?
정확히 일주일 후,
우리가 입을 모아 말한다
유일하게 우리가 우리 같은 순간
너 나 할 것 없이 침을 삼키는 순간


하나만 남았다
나만 남았다


오늘부로 나는 우리라는 말을 쓸 일이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