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만추(晩秋) - 성선경

마루안 2016. 11. 20. 22:02



만추(晩秋) - 성선경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분노나 슬픔 혹은 절망이 우리를 강하게 하는 것은 아니듯
기쁨이나 행복 혹은 희망이 우리를 약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고통스런 꽃샘의 끝에 봄꽃이 피듯이
가장 화창한 봄날에 꽃잎이 꿈같이 지듯이


아내보다 더 어른스런 말을 하는 딸 앞에서
나보다 더 어른스런 행동을 하는 아들 앞에서
우리는 주눅이 들 듯 늙는다


세월은 늘 감추고 싶어 하는 아내의 세치 같은 것
그보다 더 깊은 주름살 같은 것


내가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을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알아차릴 때
우수 뒤의 목련같이 우리는 늙는다.



*시집,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산지니








한로(寒露) - 성선경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명예퇴직서(名譽退職書)를 앞에 두고
끌까지 가지를 움켜진 단풍잎같이 붉어져 볼 것인가
풀잎에 내린 찬이슬같이 끝까지 매달려 볼 것인가
놀란 자라목같이 밤새 주름진 생각의 관절들이
우두둑 우두둑 뼈마디 꺾이는 소리를 낸다.


생각에도 마디마디 꺾이는 관절이 있어
뚝뚝 팔목 꺾이는 소리가 들리는가.


생각해 보면 빈속들이 대나무같이 마디를 만드는 갑다.
생의 길은 가르마같이 늘 한가운데 있다는데
소금장수 우산장수 두 아들을 둔 늙은이같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여 마음을
자꾸 문지르자 종이쪽같이 나달나달해져서


한로(寒露), 가을 연잎같이 찬이슬이 이마에 맺힌다.


생각하면 한로(閑老)
나도 한가로이 늙어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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