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무소속 - 이영광

마루안 2016. 11. 20. 21:41



무소속 - 이영광



부자들에게 십원 한 장은커녕
젖은 눈길 한번 받은 적 없는 서민들이
서민이므로,
서민 이외 다른 배역이라곤 얻어본 적이 없었으므로
너무 열받고 뼈아프고 어지러웠으므로 로또,


부자를 찍어 옥좌에 앉히고
국회로 보낸다
우리를 짖이겨버리세요
네가 날 살려주지 않으면
내가 날 확, 그어버리겠어요



저지르는 자는 포기한 자,
뼛속까지 빨리고도 뭔가를 또 갖다바치는
사이비교 신도들이랄까
?
이 없다
도통(道通)
무념
무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털도 다 빠진 인간들을 다시 으르릉대는 짐승으로 역(逆)진화시키는
대책없는 이, 아사리판이겠지
인간 이상의 체급으로 제 몸뚱이를 불린 아귀들이
주름잡는 짐승 우리에서 하여간, 조또
살아야 하니까


굶어죽는 이는 없는데도
굶어죽던 시절보다 더 배고프고 더 배아픈 아, 대한민국
찢어지게 못사는 추운 봄 4월
아가리를 이빠이 벌린
확성기가 운다


졸업하면 대개 무소속이 될 안산 문창과 아이들한테
무소속으로 와서 썰 풀고,
나는야 나 이상이야, 이건 내가 아니야
최면 걸고 배에 힘주고
무소속으로 가는 길


이제 그만 주저앉았으면 싶은 어룽어룽한 길 좌우로 나란히
남의 세상에 놀러왔다 가는 찬란한 무소속 후보들,
희디흰 저 벚꽃 행렬 따라가고 싶다
따라가고 싶은데, 따라가고 싶지만
저 가슴 저리는 노선에 대해서야말로 나는 이제 진짜 무소속


그러나, 소속이란 영구히
번뇌 아닐까


무전
무직
무력
무죄의
무소속들이,
진흙으로 빚은 검은 얼굴들이 도처에서
제 발등을 돌로 찍으며 운다



*시집, 아픈 천국, 창비





 



대(大) - 이영광



대한민국이여, 대가리에 쓴 그 대(大)자는
음경확대수술 후유증 앓는 귀두 같구나
커질 수만 있다면 문드러져도 좋아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
반쯤 얼어터진 봄이 다 가도록
사람 죽여 원혼 만들고
전쟁과는 전쟁할 줄 모르는 공포의
대한민국이여, 함께는 사실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절망이겠지
무수히 적을 물리쳐도 예부터
전쟁을 무찌른 용사는 없었는데
대한민국이여, 겨우겨우 키운 좆 움켜쥐고
사창가로 쳐들어가는 취한 수컷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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