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독한 낙엽 - 강영환

마루안 2016. 10. 19. 23:51



독한 낙엽 - 강영환



길이 묻힌 산문 밖
물 위에 스스로 진 낙엽은 독하다
멍 든 잎을 등에 업고
서산에 저물어가는 노을 속으로
온 몸을 굴러가는 물소리
골짜기에 남긴 발자국이 독하다
넘어지고 고꾸라지고 부딪쳐 찢어지고 깨어져도
잠기지 않는 색을 멀리까지
힘들어도 데려가고 싶었을까?


몸 부스러져도 좋은 낙엽은
마음 씀씀이가 소용돌이로 쉬이
바위 틈 새로 빠져 나가지 못한다
저물다 지쳐 물에 든 미명 속에서
흙더미가 서릿발로 한 뼘 높아질 때
독한 잎이 진 자리 하늘이 비어
여윈 나뭇가지에 싸늘한 시선들
힘 빠진 별이 독하게 걸어갔다
잔걸음으로 어둠은 물에 들고
길이 묻힌 낙엽은 산문 밖에서 저물었다



*시집, 공중의 꽃, 책펴냄열린시








도피 - 강영환



나는 어찌 안개가 그리운 것인가
황량한 벌판에 서서 물소리를 엿듣고
속살로 얼굴 가려주는 안개는
전쟁으로 난 흉터를 숨겨 주었다
짐승으로 변한 눈초리를 가려 주었다
전생에 간직한 험한 기억까지도 잘게 부수어
파편 틈새마다 갈댓잎 나부끼는 강을 끼워
유리창 밖에 고이 간직했다
봄이 오는 거리 독한 체루가스에 취해
끝없이 토하고 콧물 흘리던 때
울지 말라 등 두드려 주던 안개는
불투명한 거리를 지나 어디에 서있는가?
산골짜기 낮게 뭉쳐 스크럼 짜던 안개는
벼랑 끝에서 추락하지 않았는지
앞장 선 젊은 피가 그리운 것인가





# 햐~좋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강영환 시인은 몇년 전부터 부산에 있는 무명 출판사에서만 연속으로 시집을 내고 있다. 시인이 10대부터 사는 동네에서 예순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살고 있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스마트폰 시대라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기에 이런 시가 더욱 소중하다. 예전에 부산을 여행할 때 걸었던 사람 냄새 풍기는 부민동의 비탈진 골목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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