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쓴맛이 사는 맛 - 채현국

마루안 2016. 3. 7. 00:36

 

 

쓴맛이 사는 맛이라는 제목이 확 꽂힌 책이다. 일종의 자서전이랄 수 있는데 당사지인 채현국 선생이 직접 쓰는 것을 완강히 사양해서 정운현 기자가 선생의 구술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일종의 인물 평전이라 하겠다.

시대의  어른 채현국, 삶이 깊어지는 이야기, 이렇게 달린 부제에 걸맞게 읽고 나면 쫄아들었던 가슴이 활짝 펴지는 것을 느낀다. 문장도 아주 쉽다. 하긴 사람 사는 이야기에 미사여구로 분칠하는 것도 되레 거부감을 들게 할 수 있다.

채현국 선생이 주변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한번 쓰라는 권유를 뿌리친 것도 그런 이유다. 쓰다 보면 본인을 미화할 테니 쓰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선생을 만나 구술한 내용을 글로 옮긴 정운현에게도 누차 강조한 것이 쓰다 보면 좋게 쓸려고 한다며 충고했다.

정운현은 책에서 나이가 벼슬인양 추하게 늙어가는 노인들의 현실을 이렇게 말한다. *모든 어린이가 제대로 훈육되고 보호 받을 권리가 있듯 노인들은 존경 받고 보살핌 받을 귄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노인들 스스로도 존경 받기 힘든 행동들로 젊은 세대와 불화한다. 아름답게 늙는 것은 노인들의 권리이자 의무다. 그렇다면 노인들은 왜 '저 모양'일까? 왜 저렇게 처참하게 무너졌을까? 추측건데 주체성의 부재, 혹은 상실 때문이 아닌가 싶다.

태어나면서부터 식민지의 노예였고, 이후에는 산업 역군으로 포장된 일꾼이었다. 그러면서도 배를 곯지 않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불행하게도 노예근성이 체화(體化)돼버렸다. 그 결과 비판력이 상실되고 권력 앞에서는 한없이 왜소해지는 비정상의 자아를 형성하게 되었다. *본문 27 페이지

1935년에 출생한 선생은 팔순이 지난 나이에게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을 가지고 있다. 선생이 산 80년이 한국현대사라 해도 될 정도다. 사업 수완 좋은 부자 아버지를 둔 덕도 있지만 어려운 사람에게 배풀었던 심성은 깨어있지 않으면 쉽지 않다.

부자일수록 더 돈에 집착하게 마련인데 한때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 2위를 기록할 정도의 재산가였지만 선생은 현재 효암학원 이사장으로 참 교육을 제대로 실현하고 있다. 선생을 일러 이 시대의 참 어른이라 하는데 그의 삶을 지켜본 사람은 모두 동의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쓴맛이 사는 맛은 선생이 이사장으로 있는 효암고등학교 정문 한쪽에 비석으로 새겨진 문구란다. 누군들 쓴맛을 좋아하랴만 너무 편하게만 살려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문구다. 그 쓴맛이 무슨 맛인지는 책을 읽고 나면 제대로 알 수 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