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 다니엘 튜더

마루안 2016. 9. 7. 08:38

 

 

 

영국 맨체스터 출신의 기자가 한국에서 취재한 사회 현상을 세밀하게 지적하고 있는 책이다.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이라는 아주 문학적인 제목도 맘에 들지만 특히 <서양 좌파가 말하는 한국 정치>라는 부제가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의 정치 현실을 지적하는 글이 대부분이다. 서양 언론의 특파원으로 한국에 머물렀던 그는 언론인이나 정치인에게 빌붙어서 콩고물 받아 먹는 기자는 아니다. 오히려 불법이 아닌 선에서 받아 먹을 것은 적당히 챙기고 대중과 언론을 이용하는 정치인을 신랄하게 비판하다.

그가 취재한 기간이 이명박근혜 정권 시기에 집중 되어서 새누리당과 함께 두 정부를 파헤치고 있다. 이명박의 사대강 사업과 자원 외교 실패로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다는 것도 지적한다. 그 돈으로 차라리 복지에 투자를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진단도 한다.

외국인 당신이 뭘 알아? 할지 모르나 한국의 어떤 기자보다 예리하게 정곡을 찌르는 글이다. 문장 실력도 좋다. 왜 한국에는 이렇게 날카롭게 사회 현상을 지적하는 기자가 없는 것일까. 읽으면 읽울수록 기자의 지적질에 수긍이 간다.

그이 지적대로 한국 현실은 변명할 수가 없다. <나쁜 정치인에게 정치에 무관심한 대중은 최고의 선물이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에 관심 없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그래도 상황이 나은 편이다. 민주화 이후 투표율은 낮아졌지만 2012년 대선 투표율은 거의 76 퍼센트에 달했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의 성향이 너무나 쉽게 돌변한다는 것이다. 한국 유권자들은 일시적 열풍이나 여론에 쉽게 휩쓸리고 특정 사안에 격분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잊어버린다. 이 때문에 짧지만 인상적인 발언이나 경제민주화 같은 텅 빈 구호로도 정치가 가능하고 부패도 판을 친다>.

<한 가지 이슈에 열을 올리다가 금세 새로운 주제로 옮겨가는 한국 여론의 냄비 현상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는 워낙 특이한 상황이어서 아마추어 사회학자, 특히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도 한마디씩 하고 그들 나름대로 원인을 진단하곤 한다.

정치 견해부터 최신 유행 음식이나 요즘 뜨는 연예인까지 모든 것이 급변하는 경향 덕분에 한국 사회는 역동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냄비 현상이 정치문화에는 분명 악영향을 끼친다. 지독한 부패를 저지르고 의원직까지 박탈당해놓고도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데로 옮겨가 악행이 잊히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뻔뻔하게 다시 얼굴을 내미는 한국 정치인들이 어디 한둘인가>.

변명할 수 없을 정도로 백 번 맞는 얘기다. 그러면서 그는 새누리당이 그토록 걱정하는 과잉복지로 곧 그리스 꼴 난다는 프레임을 반박한다. OECD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복지 예산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복지는 투자다, 그의 명확한 주장이다.

안철수 열풍 현상을 그는 부정적으로 본다. 바닥에서부터 기반을 다진 것이 아닌 허상이 포장된 정치인이라고 진단한다. 안에서 보는 눈보다 밖에서 보는 눈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 튜더 기자의 한국 사회 진단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시원시원한 문장력 때문인지 지루할 틈 없이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