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미루나무에 노을을 붙들어 매며 - 성선경

마루안 2016. 10. 2. 21:53



미루나무에 노을을 붙들어 매며 - 성선경



그대 그러지 마시게
해가 진다고 마음도 노을이 들까


깔고 앉은 바위에서 엉덩이를 들어
툭툭, 돋아나는 별들을 가리키며
돌아서면 아직도 아쉬운
노을 같은 사람아


그대 그러지 마시게
해가 산을 넘는다고 그리 쉬 잊힐까?


나는 아직도 지는 해를 붙잡아
뜨거운 손 놓지 못하는데
그대 그러지 마시게


어이 무장한 들꽃은 손을 흔드는가?


그대 부디 그러지 마시게
한 잔 술에도 붉어지는 얼굴
아직 다 보여주지 못했는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걸음을 옮기는 사람아


마음의 귀를 잡으면 첩첩하고
생각의 눈을 잡으면 회회한데


나는 미루나무 등걸에 해를 묶고
손으로 저 하늘을 다 가려
보라 별 돋는다, 그대 말씀 가리고 싶은데.



*시집,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산지니








밥罰(벌) - 성선경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밥벌이는 밥의 罰이다.
내 저 향기로운 냄새를 탐닉한 죄
내 저 풍요로운 포만감을 누린 죄
내 새끼에게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이겠다고
내 밥상에 한 접시의 찬이라도 더 올려놓겠다고
눈알을 부릅뜨고 새벽같이 일어나
사랑과 평화보다도 꿈과 이상보다도
몸뚱아리를 위해 더 종종거린 죄
몸뚱아리를 위해 더 싹싹 꼬리 친 죄
내 밥에 대한 저 엄중한 추궁
밥벌이는 내 밥의 罰이다.





# 처서 무렵의 서늘한 바람에서 가을을 예감한 것도 잠시 늦여름과 해찰 부리다 그만 가을이 성큼 다가온 줄도 몰랐다. 사는 것은 먹는 벌을 받는 것,, 법벌이의 고단함도 다 그 사는 벌 때문이다. 가을 데리고 잠시 외출을 나온 바람이 전해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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