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다 스쳐 보낸 뒤에야 사랑은 - 복효근

마루안 2016. 10. 9. 19:33



다 스쳐 보낸 뒤에야 사랑은 - 복효근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산길에선 정말 믿을 사람 하나 없다
정상이 어디냐 물으면
열이면 열
조금만 가면 된단다


안녕하세요 수인사 하지만
이 험한 산길에서 나는 안녕하지 못하다
반갑다 말하면서 이내 스쳐가 버리는
산길에선 믿을 사람 없다


징검다리 징검징검 건너 뛰어
냇물 건너듯이
이 사람도 아니다 저 사람도
아니다 못 믿겠다 이 사람
저 사람 건중건중 한 나절 건너 뛰다보니 산마루 다 왔다


그렇구나, 징검다리 없이
어찌 냇물을 건널 수 있었을까
아, 돌아가 껴안아 주고 싶은
다 멀어져 버린 다음에야 그리움으로 남는
다 스쳐 보낸 뒤에야 사랑으로 남는
그 사람 또 그 사람...
그들이 내가 도달할 정상이었구나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이 산길에 나 하나를 못 믿겠구나

 


*시집, 목련꽃 브라자, 천년의시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 복효근

 

 
내가 꽃피는 일이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면
꽃은 피어 무엇하리
당신이 기쁨에 넘쳐
온 누리 햇살에 둘리어 있을 때
나는 꽃피어 또 무엇하리
또한
내 그대를 사랑한다 함은
당신의 가슴 한복판에
찬란히 꽃피는 일이 아니라
눈두덩 찍어내며 그대 주저앉은
가을 산자락 후미진 곳에서
그저 수줍은 듯 잠시
그대 눈망울에 머무는 일
그렇게 나는
그대 슬픔의 산높이에서 핀다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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