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마루안 2016. 2. 5. 00:12

 

 

 

나름 여행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의 여행은 걷기 여행을 하리라 마음 먹은 것이 이태 전이다. <흔히 가슴 떨릴 때 떠나라. 다리 떨리면 늦는다>는 말이 있는데 선배 중에 그렇게 여행과 등산을 좋아했는데 오십 줄 넘어서면서 딱 멈췄다.

무릎 통증 때문이다. 가벼운 교통 사고의 영향이 크지만 선배는 좀더 일찍 걷기 여행을 많이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지금은 공원 산책을 천천히 할 수 있을 정도까지 회복했지만 예전처럼 등산을 할 정도로 돌아가기는 힘들다고 한다.

나는 어머니늘 닮아 다리가 튼튼한 편이다. 하체가 튼튼한 편이라는 것이 맞겠다. 어머니는 70이 넘을 때까지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다. 젊었을 때부터 이런 저런 장사로 머리가 벗겨질 만큼 물건을 이고 십 리 이십 리 길을 다녔다. 십 리 길이 넘는 오일장도 어머니는 늘 걸어서 다녔다.

건실한 치아까지 어머니를 꼭 빼닮은 내가 그런 튼튼한 다리를 물려 받았음은 물론이다. 장담할 수 없는 것이 건강이지만 늦기 전에 더 열심히 걸어볼 요량이다. 이 책은 걷기 여행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워낙 유명하기에 익히 들었다.

그래서 꼭 걷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여행은 갈 이유보다 못 갈 이유가 더 많은 법이긴 해도 가능한 덜 알려진 길을 걷고 싶다. 소설가 서영은 선생은 짧은 결혼 생활을 뒤로 하고 김동리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 마음을 닫고 산 세월이 10여 년이었다.

이 책에도 드문드문 김동리 선생을 언급하곤 하는데 그만큼 선생은 스승이자 연인이고 남편이었던 김동리 선생의 그늘이 참 깊었을 것이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30년 연상의 스승을 사랑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책은 선생이 유언장을 쓰고 순례길을 끝없이 걸으며 기록한 책이다. 비록 그 길을 경험한 동행자가 있긴 했어도 60대 중반을 넘은 여자가 걷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처음의 두려움과는 달리 길을 걸을수록 체력이 솟구치고 용기가 배가 된다.

동행과의 작은 불화도 거뜬히 소화를 하면서 걷는 순례길은 험난한 여정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채색된다. 함께 길을 떠난 것처럼 술술 읽힌다. <머물렀지만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떠나게 하는 것이 이 길 위의 모든 알베르게가 순례자들에게 무언으로 가르쳐주는 행동지침이었다>. 나는 이미 실천하고 있기에 이 글귀가 인상적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잘 표현한 이런 문구도 있다. <말똥과 소똥이 비에 풀어져 껄쭉해진 진창길, 울퉁불퉁한 돌멩이들이 비에 젖어 미끈거리는 길, 댐을 끼고 왼쪽은 절벽, 오른쪽은 바위벽(수시로 낙석이 떨어지는) 사이의 폭 30센티밖에 안 되는 벼랑길이 거대한 댐을 끼고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진다. 더없이 아름다운 절경이 더없이 큰 두려움을 준다. 그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목숨이 위협받는 느낌. 인간 인지력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 이 길을 선생은 눈비를 번갈아 맞아가며 끊임 없이 걸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 했지만 직접 걷지 않아도 그 감동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내가 걸었던 길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으로 나온 산티아고 순례기는 수없이 많다. 나는 이 책 하나로 당분간 그쪽으로는 눈을 돌리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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