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포장마차 - 이영광

마루안 2016. 8. 24. 09:21



포장마차 - 이영광



사는 것보다
살려고 마음먹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강력하게 주정하기 위해
포장마차는 망하지 않고 있어요
반은 무직 반은 외상객,
다 웬수의 단골들이죠


콩자루에서 쏟아져나오는 콩알들을 놓치는 손끝처럼
생은 대략, 난감한 것이지만
난감의 모세혈관들이 아토피같이 마른 몸에 번져가도
편안한 삭신을 꼼짝도 하기 싫은
전사 직전이지만


여기, 슬픈 독이 있어요
들어가 태우면 어디선가 덜덜덜
쓰레기 같은 힘이 솟구치는,
불의 잔이 있어요


우린 우릴 졸업했어요
우린 우릴 닥쳤어요, 그렇지만
이따위로 살면 안돼
살면 안돼
고함치는 곳
여기, 슬픈 발광이 있어요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
패잔병들도 전쟁중이라는 것


그러니까, 사는 건 결코 어렵지 않아요
살려고 마음먹는 것보다는
살아보려고 마음먹을 때까지 생이
받아주지도 버려주지도 않는 것보다는


곤충처럼 팔팔한 포장마차가 폭삭 망해
불을 끄고,
불을 뿜으며,
잠든 황야로 질주해가는 것보다는



*시집, 아픈 천국, 창비








건재 - 이영광



'고별 폐업 대잔치' 현수막이
삼년째 걸려 있는
아디다스 매장


고별은 슬프지만,
새 추리닝을 사러 가도 여전히
폐업은 진행중


'완전 망했음'은 사실이 아니더라도
진짜 완전 망할 때 완전 망하더라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듯


아디다스인지
아디도스인지
아디오스인지
헷갈리는


폐업을 도와준 건지
막아준 건지
위로해준 건지
헷갈리는


어쨌든, 죽을 때 죽더라도
앉아서 죽을 순 없다
파업하듯 힘차게 현수막 펄럭이는
폐업 대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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