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이렌 - 임경섭

마루안 2016. 8. 22. 08:28



사이렌 - 임경섭



누나는
사랑니를 앓고 있어서 밤새 뒤척였고
그사이 신축 아파트 단지 너머로
앰뷸런스가 지나가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했다


누나는
어금니에 힘을 꼭 주고 있었지만
자기보다 아픈 사람들의 신음이
희미하게 자꾸 들려오는 것 같아서
응급실에 갈까 잠깐 고민한 게
미안했다고도 했다


누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조금밖에 아프지 않아 사과하는 사람
잘못도 하지 않은 채 용서를 비는 사람


학교에서 배운대로 실천하는 사람
그래서 모든 신호를 지키는 사람
법을 믿는 사람
아주 도덕적인 사람


재건축에 묶인 누나네 집 앞은
보도블록도 깔지 않아서
온통 잿빛이었다



*시집, 죄책감, 문학동네








휘날린 - 임경섭



여름성경학교에 갔던 밤이었다
수련원은 적막했으나
그만큼 벌레들은 크게 울었다
큰 소리로 기도하는 사람일수록
죄가 없는 사람
누나는 그보다 고요하게 기도했다
누나의 죄는
돌기 돋는 송곳니 사이로 삐져나온
짐승의 끈적한 언어와도 같은 것이었으니,


휴지가 필요한 밤이었다
난 늘 닦아내는 꿈을 꾸니까
우리는 늘 휴지를 가지고 다녔다
세상엔 닦아낼 것들이 너무도 많았으니까


휴지를 가지고 다닌다는 건
언제나 더럽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나의 유년은
쌓여 있는 시간들 사이에
숨은,
뽑으면 더러워지고 뽑지 않아도
더러워지는,
한없이 순서를 기다리거나 한순간 구겨져
사라질,
얇은 고백들일 것


그날 밤, 누나의 간증을 엿들으며 생각했다
엄마에게 한 번도 휴지를 사달라고 조른 적 없는 나는
깨끗한 사람일까
잠을 자지 않는 이상 이 천막 예배당엔 아침이 오지 않을 테니
꿈은 더럽고 미래는 깨끗한 사람이
우리라는 걸까





# 임경섭 시인은 1981년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죄책감>이 첫 시집으로 자기 색깔이 확실한 시를 쓰는 젊은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