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한 식구에 관한 추억 - 박철

마루안 2016. 8. 20. 00:21



한 식구에 관한 추억 - 박철



댓돌 아래 할짝이던 개가 있었다
오뉴월 염천, 아버지 개 끌고 산으로 올라간다
삐삐선 엮어 개의 목을 두르고 가지 위로 걸었다
소나무 조금 휘청거렸다
개는 뭔 일인지 몰랐다
개, 하늘 보며 뒤룽거린다
삐삐선이 풀렸다
땅에 떨어진 개 달려나간다
"아부지 개 달아나요"
"냅도라 집으로 돌아올겨"


댓돌 아래 돌아와 서성이는 개가 있었다
아버지 다시 데리고 산에 오른다


개는 정말 뭔 일인지 몰랐을까



*시집, 불을 지펴야겠다, 문학동네








보석 - 박철



싼 것이 편한 인생이 있다 팬티도 양말도 런닝구도
싼 것을 걸쳐야 맘이 편한 사람들이 있다
한번 산 운동화를 사골 고듯 신고 다니는
그런 사람들이 보석처럼 지키는 한 가지가 있다
그렇게 싼 것을 걸침으로써 그들에게
밸런스를 맞추고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하는
소중한 무언가가 하나씩은 있다
지금 나의 남루 속에
천금같이 숨겨져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청노새 눈망울처럼 절실한 그리움의 보석은 무엔가
무엔가 말이다


어제는 분명 긴 봄밤이었는데
오늘 잠을 깨니 단풍 이는 가을 새벽이었다
짧은 꿈속에서 조용히 흔들리던 붉은 떨림-
일장춘몽 속에 나 진정 세상 모두를 사랑하였으므로
내겐 세상 하나가 반짝이는 옥빛 구슬이었다
한없이 걸어들어가는 구슬문이었다
사랑은 덧없이 싼 가을 낙엽이었으나 나
오늘도 보석 같은 단 하나의 사랑을 따라간다





# 이 시집에서 대표작을 꼽으라면 위 두 시를 선택하겠다. 우화적인 복날의 일상이 인생 전체를 담고 있고 <보석>은 뜬구름 잡는 모호한 은유 없이 할 말을 제대로 구사한 시다. 시 제목처럼 보석 같은 시란 이런 것이다. 청노래 눈망울처럼 절실한 그리움의 보석은 무엔가,, 말이다,, 이 구절에서 오르가슴을 제대로 느꼈다. 그러고 보니 지나간 내 사랑도 뒹구는 낙엽처럼 싸구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