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천사들은 천국에서도 하이힐을 신을까 - 서규정

마루안 2016. 8. 18. 07:58

 

 

천사들은 천국에서도 하이힐을 신을까 - 서규정

 

 

상생, 공존, 교회 첨탑처럼 뾰족뾰족한 말을 들으면서

늘 궁금했지, 천국에도 강이 흐를까

비가 억수로 퍼붓는 날 우등고속 혼자 전세 내듯이

가보는 거다

길이 미끄러질 때마다 심장 하나씩 떼어놓듯이

떼어놓은 심장이 제발 좀 가벼워졌으면

왼쪽 가슴께로 자꾸 손이 가

 

공존, 상생, 입장과 경우가 서로 다른 천국보다야

일찍이 천사에게만 온 관심을 쏟았고

죄도 아닌 죄가 많았다

금융 사기나, 사상범처럼 굵직굵직하진 않고

무단횡단이나 담배꽁초 버리다

새카맣게 어린 전경에게 걸려 일장연설을 들을 바엔

차라리 은행을 털어버릴까 해도

권총이 있어야지

오른쪽 옆구리께로 손이 가다

쿡 웃음 난다, 천국에도 감옥이 있을까

내려야지, 잘못 탄 차는 속력만 빨라

경범으로 붙들려 끄덕끄덕 딱지를 떼는 단순무지가

그 현장을 건너는 최고의 경지였을 테니

천국은 가다만 곳에 있다

비가 장대처럼 쏟아질 땐 조금씩 실성할 줄도 알아야, 살아

 

 

*시집, <그러니까 비는, 객지에서 먼저 젖는다>, 작가세계

 

 

 

 

 

 

하늘 정원 - 서규정

 

 

신의 실수로 얻어 걸린 것이라, 꾸역꾸역 어디까지 가야할까

용병으로 남들 다 가는 전쟁터에도 못 가보고

데모는커녕, 정신병원에 한번 못 가봤어도

불꽃같던 십대부터 영웅소설에 젖어

깃발 하나로 광야를 달리던 클라이맥스에 너무 젖어

인생이라는 이름의 작품도시

실천보다, 젖은 앞섶을 말리기에 급급한 이유였다 해도

 

여기 공원묘지

머리맡에 산수유 껑충 물러나고

비석으로 내세운 발바닥을 조사하러 내려올

하늘공무원 중에서, 천사여

초월주의자들의 묘역에선 제발 따지지는 마

제 갈길 한번 시원하게 풀지도 못한 마침표들이, 마침내 쉬고 있어

 

 

 

 

*자서

이제 몸 다 풀리고 뼈를 녹여 부어놓은 주물의 시간인가, 청춘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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