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라진 동화 마을 - 반칠환

마루안 2016. 8. 15. 06:33



사라진 동화 마을 - 반칠환



더 이상 불순한 상상을 금하겠다
달에는 이제 토끼가 살지 않는다. 알겠느냐
물 없는 계곡에 눈먼 선녀가 목욕을 해도
지게꾼에게 옷을 물어다줄 사슴은 없느니라
아무도 호랑이에게 쫓겨 나무 위로 올라갈 일이 없을 것이며
나무 위에 오른들 더 이상 삭은 동아줄도 내려오지 않느니라
흥부전 이후, 또다시 빈민가에 박씨를 물고 오는 제비가 있을 것이며
소녀 가장이 밑 없는 독에 물을 부은들 어디 두꺼비 한 마리가 있더냐
이 땅엔 더 이상 여의주가 남아 있지 않나니,
한때 지구 자체가 푸른 여의주였음을 알 턱이 없는 너희들이
삼급수에서 비닐 봉다리 뒤집어쓴 용이 승천하길 바라느냐
자아, 더 이상 철부지 유아들을 어지럽히는 모든 동화책의 출판을 금한다
아울러, 덧없이 붉은 네온을 깜박이는 자들이여
쓸데없는 기도를 금한다
하느님은 현세의 간빙기 동안 취침중이니
절대 교회문을 시끄럽게 두들기지 말거라
너희가 부지런히 종말을 완성할 때 눈을 뜨리라



*시집,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시와시학사








한 평생 - 반칠환



요 앞, 시궁창에서 오전에 부화한 하루살이는, 점심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했으며,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외쳤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칠일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득음도 있었고 지음이 있었다. 꼬박 이레 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한 번도 나뭇잎들이 박수를 아낀 적은 없었다.


칠십을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도 미뤄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도 미뤄두고, 모든 좋은 일이 좋은 날 오면 하마고 미뤘더니 가쁜 숨만 남았구나.


그 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 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 년째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한평생이다.